통쾌한 여성 복수 영화 8편 리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편했는데 표현할 수 있는 법을 몰라서 안 한 것 같다. 어른들은 내가 딸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초등학생이었을 땐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괴롭혀서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더니 짝사랑해서 장난치는 것이라며 다독였고 남자아이들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그 충격으로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벽을 기대고 앉아도 뒤를 돌아볼 정도로 불안했다. 중학생이 됐을 땐 이성에 눈을 떠서 남자 친구도 여러 명 사귀었다. 그들은 내게 허락을 받지 않고 스킨십을 요구했다. 어린 나이이고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남자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나에게 조금 더 예뻐질 것을 강요했고, 남자가 나를 쫓아와서 협박하고 성폭행을 저지르려고 했는데도 경찰은 소리 지르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했다. 그렇게 모든 건 내 잘못이 됐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에게 말하면 아픔을 공감 해주기는 커녕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다는 말만 돌아왔다.
여성다움이 약함과 연관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 주이 디샤넬
최근 N번방, 박사방으로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 성폭행하는 범죄가 성범죄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가스라이팅, 그루밍, 스토킹,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등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세상에 사는 많은 여성이 남성에게 피해를 당한 적이 있을 거다. 어렸을 적이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말해도 묻혀버리는 상처들. 환멸 나는 혐오 속에서 잠깐의 통쾌함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모아봤다. 내 영화 리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미국
공포
1시간 50분
★★★★☆
외딴 마을에 오게 된 작가 제니퍼는 동네 청년들과 보안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안심하던 남자들에게 복수를 한다.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1978년 개봉한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을 향한 폭력을 단순하면서도 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잔인한 장면으로 원작과 리메이크 모두 논란이 됐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스토리가 큰 인기를 얻었고,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만 저지르던 불쾌한 B급 영화판에서 통쾌함을 만났다며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여느 여성 복수 영화가 그렇듯 피해를 당하는 장면이 과하게 등장한다. 감상하는데 불쾌함을 느낄 수는 있으나, 수위가 높아 기대한 것만큼의 복수를 보여주기 때문에 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던 영화였다.
프랑스
액션
1시간 48분
★★★★★
사막으로 여행을 온 젠은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애인은 사실을 묻으려고 한다. 두려움을 느낀 젠은 도망치다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자들에게 복수를 한다. <리벤지>는 2017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액션 영화로, 사막이라는 한정된 배경에서 자신을 성폭행하고 죽이려는 남자들을 쫓아 복수하는 통쾌한 작품이다. 단순하게 복수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 큰 의미를 전달하는 연출도 많이 등장한다. 초반 분홍색으로 도배된 집안과 과장되게 꾸며진 젠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성을 강조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파란색으로 도배되는 집안과 깨진 창문, 분홍색이 사라진 젠의 모습은 그가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무언의 다짐을 보여준다. 잔인한 장면은 있지만 불쾌한 장면이 적기 때문에 깔끔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미국
드라마
1시간 35분
★★★☆☆
간호사 미란다는 친구의 소개로 집에서 데이트를 기다리고 있던 중 의문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범인은 체포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던 미란다는 범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리턴 투 센더>는 에이미로 유명한 로자먼드 파이크 주연으로, 성폭행 피해자가 된 여성의 불안과 무너져가는 일상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다. 손을 떨게 돼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매일 밤 고통으로 지친 미란다는 범인에게 복수를 하고 난 뒤 손을 떨게 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달라진 모습에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말도 많지만, 범인이 잡혔음에도 해결되지 못했던 상처로 강해져야 했던 여성의 절박함은 아니었을까. 스토리, 연출 면에선 지루하지 않고 훌륭했지만 통쾌한 복수가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점이 아쉬웠던 영화였다.
미국
액션, 스릴러
1시간 41분
★★★★★
라일리는 눈앞에서 가족을 잃는다. 범인을 지목했음에도 부패한 판사는 범인을 풀어주고 분노한 라일리는 스스로 관련된 인물을 죽인다. <아이 엠 마더>는 <테이큰>을 제작한 피에르 모렐의 작품으로, 뻔한 줄거리와 클리셰를 가지고 있음에도 잃을 것이 없는 라일리의 통쾌한 액션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자신을 가두려는 경찰을 피해 도망친 라일리는 5년 동안 많은 준비를 하고 하나 둘 처단하기 시작한다. 부패한 판사와 경찰이 등장하는 일반적인 영화지만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던 여성을 죽이지 않는다거나 딸과 비슷한 또래인 아이 및 경찰이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까지 지켜준다는 설정은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이 됐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액션 장르에 지친 여성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는 거침없는 영화였다.
미국
액션
1시간 35분
★★★★★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매를 초대한다. 화기애애하던 파티에 찾아온 정체불명 괴한들로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하면서 애인을 따라 파티에 참가한 에린의 눈빛이 달라진다. <유아 넥스트>는 <블레어 위치>를 제작한 애덤 윈가드 감독의 작품으로, 괴한들에게 쫓기고 쫓는 과정에서 생기는 액션과 반전이 매력 있었던 작품이다. 많은 영화에서 여성은 괴한에게 살해당하고 도움이 되지 않은 짐으로만 여겨졌는데, 이 영화는 괴한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발버둥 치는 여성을 다루는 고문 포르노가 아닌 여성도 강하고 뛰어나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다. 또한, 칼처럼 슬래셔 장르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부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흔하면서도 색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설정까지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영화였다.
미국
공포
2시간 4분
★★★☆☆
자신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소시오패스에게서 도망친 세실리아는 남자의 자살 소식과 함께 거액의 돈을 상속받게 된다. 하지만 그날 이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인비저블 맨>은 1933년 개봉한 영화를 리메이크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물체로 인한 공포와 사회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이다. 세실리아의 마지막 표정이 인상 깊었는데,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는 영화를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투명 인간 영화는 남성의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이 작품은 위협받는 여성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몸을 가리던 여성은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을 억압하는 투명 인간에게 복수를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스라이팅, 스토킹의 문제를 잘 풀어나간 영화였다.
미국
공포
1시간 33분
★★★☆☆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기로 서약한 던을 음흉하게 바라보는 남자들, 여러 위기를 겪은 던은 자신의 성기에 이빨이 달린 것을 알게 된다. <티스>는 2007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B급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스토리로 여성을 향한 성범죄를 비판하는 통쾌한 작품이다. 잔인한 장면과 달리 아름다웠던 화면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진찰이란 이름으로 성추행하려던 의사, 성폭행하려던 남자 등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 이빨이 튀어나온다는 설정은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황당할 수도 있다. 저주라고 생각됐던 이빨이 자신을 지키는 무기라는 걸 알게 된 던은 더 이상 움츠려들지 않는다. B급 영화네 하고 넘겼던 작품이었는데 다시 감상하니 여성을 향해 무례한 시선과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최고의 영화였다.
미국
액션
1시간 30분
★★★★☆
낯선 곳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도망친다. 사람들과 함께 사냥당하고 있는 크리스탈도 자신을 죽이려는 인물들의 정체를 밝히고 복수하기 위해 싸운다. <헌트>는 공포 영화로 유명한 블룸 하우스에서 제작했으며, 사회를 풍자하는 영화답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처절하면서도 통쾌한 액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면 잡혀 온 여성이 군인이었고 악당을 죽이는 영화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성별, 인종, 종교, 동물 등 여러 사회 문제를 담고 있다. <유아 넥스트>처럼 처음부터 약한 모습을 보이고 발전해나가는 여성 캐릭터가 아닌 처음부터 강해서 악당을 물리치는 액션이라서 통쾌함이 배로 증가한다. 무분별한 혐오가 퍼진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PC라는 단어로 혐오를 덮으려는 사람에겐 눈엣가시로 여겨질 것 같았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