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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May 31. 2020

기본적이고 평범한 것을 위한 싸움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 더 패드 프로젝트 (2018) 리뷰




피리어드 : 더 패드 프로젝트 (Period : End of Sentence), 2018


미국

다큐멘터리, 단편

26분








뉴델리에서 60km 떨어진 외곽, 그곳에 사는 여성들에게 생리를 물어봤다. 그들은 쉽게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 말한다. 마을에 사는 어른에게 생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건 신만이 안다. 나쁜 피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또 다른 여성은 생리 때문에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만 안다고 답했다. 학교 교실에 모인 여성과 남성들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 여성은 선생님의 질문에 그건 여성의 문제라며 쉽게 답하지 못했고 같이 수업을 받는 남자들 중 한 명만이 생리를 알았다. 다른 남자들은 생리는 여성만 걸리는 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생리를 시작하고선 잘 하던 공부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매 주기마다 천을 바꾸기 힘들었고, 생리 때 나오는 피로 천이 축축하게 젖어 자주 갈아야 했으며 천을 바꾸기 위해선 먼 곳까지 가야 했다. 멀리 간 곳에서도 주위에 남자들이 돌아다니고 쳐다봐서 천을 갈 수 없었다. 그는 생리를 시작하고 난 뒤,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달라지기를 바랐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마을 사람들의 적이 된 스네하는 여성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걸 많이 봤으며 인도에선 여성이 일하거나 독립적이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여성은 무언가를 배우고 직업을 가지는 것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하는 그는 결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인도의 여성은 생리 기간에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않으며 사원에도 가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그들이 생리를 하기 때문에 들리지 않을 거라고 한다. 스네하는 기도를 드리는 신이 여성임에도 생리 중에 사원에 들어갈 수 없는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가족 중엔 패드를 쓰는 사람이 없어요
패드를 쓰면 어딜 다니든 편하다고 들었어요
천 같은 걸 댄다고 놀림받을 일도 없고요


생리대를 낡은 옷으로 대신한다는 레카는 저녁이 되어 아무도 없을 때 몰래 버린다. 레카를 포함한 많은 여성의 문제를 알고 있던 사바나는 여성들에게 더러운 천이 아닌 깨끗한 천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저가 생리대 기계를 발명한 아루나찰람 무루가난탐은 인도의 생리대 이용률은 현재 10% 미만이며 100%로 만드는 게 목표다.



마을에 패드를 만들 수 있는 기계가 설치됐지만 여성들은 생리대(패드)가 무엇인지 모르며 처음 들어보거나 들어봤지만 살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생리대를 보여주며 패드를 선물하면 사용할 것이냐고 묻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생리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 더 패드 프로젝트>를 보면서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 더 패드 프로젝트>는 생리가 더러운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인도에서 오래된 관습과 편견을 깨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과거부터 이어지는 역사에서 생리가 불결하게 여겨지는 것을 비판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생리대가 인도의 여성들에겐 다가갈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린 이유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1년 앞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가 생각났다.



생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엄격한 금기어예요


인도의 남성들은 생리를 모르거나 여성만 걸리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레카의 삼촌에게 기계의 쓰임새가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기계로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몰랐으며, 아빠도 선뜻 답을 하지 못했고 무엇인지 알았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들도 생리를 언급하기 부끄러워하며 생리대의 존재를 알면서도 주변에 남성들이 많아 상점에서 사기 힘들다고 말한다.


인도는 인구의 대부분이 종교를 믿는 나라답게 여성인 신도 존재한다. 그들이 여성의 출산을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생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생리 중엔 어떠한 움직임도 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문화도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도엔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생리의 존재가 사라진 것일까. 과거 가부장적인 나라에서 권력을 잡은 건 남성이었다. 그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한 행동은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었는데, 존재가 부정당하여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그림자처럼 여겨지는 그들이 유일하게 모습을 들어낼 수 있는 부분은 출산이었다. 여성이 출산의 역할만 하던 나라에서 자란 남성들은 당연히 여성의 몸을 이해를 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무지함을 보이게 된다. 그렇기에 남성들은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고 여성들은 부끄러움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지하철 의자에 빨간 피가 고여있는 사진과 함께 여성이 생리가 터져 피가 흐르는데도 뒤처리를 하지 않고 도망쳤다는 글이 올라온 적 있다. 글을 본 남성들은 생리하는 것을 알면서도 치우지 않고 도망친 여성을 조롱하는 말을 남겼지만, 여성들은 글을 보고 의문을 가진다. 자신이 경험한 생리의 양은 저렇지 않으며 글이 진실이라면 여성이 많은 피가 나올 동안 몰랐다는 점도 석연치 않았다. 인터넷엔 생리를 주제로 한 거짓된 글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성교육과 여성을 이해하지 않는 무지함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천 대신 사용할 패드를 제작하는 기계가 들어오고 일을 하기 위해 많은 여성이 모였다. 그들은 패드의 원료를 눈으로 보고 만지며 이해한 뒤 기계 사용법을 배우게 된다. 일을 하게 된 여성들은 벽에 전기 기사 전화 번호를 적어놓고 이틀 연속 정전이 되는 상황 속에서도, 낮 동안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을 때 밤에 전기가 들어오면 기계를 작동시켜 원료를 준비했다. 그들이 정전이 되고 불편한 시선 속에서도 패드를 만드는 이유는 많은 여성이 더는 더러운 천을 사용하지 않고, 천을 갈기 위해 남성들의 시선을 피하여 먼 곳까지 가지 않고,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생리대의 이름은 플라이, 여성들을 위해 설치한 기계로 만든 패드를 입고 훨훨 날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들은 직접 만든 패드를 가지고 여성들을 만나 다른 제품과의 품질 차이와 가격을 설명하며, 남성의 시선을 의식해 생리대를 살 수 없는 여성에게 직접 찾아가 편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들의 소망으로 제작된 패드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많은 상점에 팔릴 것이다.



신이 세상에 만들어 놓은 가장 강인한 피조물은
사자나 코끼리, 호랑이가 아니라 여성이에요


<피리어드 : 더 패드 프로젝트>는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내용과 인도 사회에 퍼져있는 여성을 향한 차별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사원에 갈 수 없고,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꿈을 가질 수 없고,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남성의 뒷바라지를 할 수밖에 없는 어두운 상황을 잘 담아냈다. 생리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겪은 불편함을 얘기하던 여성은 패드를 만드는 일을 하고 난 뒤 남편이 자신을 존중해 준다고 하며, 다른 여성은 자신이 번 돈으로 남동생에게 옷을 사줬다. 패드의 생산으로 많은 여성이 첫 직장을 갖게 됐다. 패드를 만드는 일이 스스로의 힘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다.


델리 경찰 소속인 여자를 아는데 경찰에 안 들어갔으면 결혼을 시켰을 거고 아무도 그 여자를 몰랐을 거예요. 이젠 마을 사람 모두가 그 여자 이름을 알아요. 그 여자 아버지는 누구 아버지로 불리죠. 그전엔 그 여자가 누구 딸로 불렸지만요


인도의 여성을 향한 혐오적인 시선을 비판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경찰이 되기를 꿈꾼다고 했던 스네하는 델리 경찰서에서 신체검사를 통과했고 필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믿었던 스네하는 미래 경찰이 되어 더 많은 영향력을 펼칠 것이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여성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묻혀있던 과거들이 밝혀지고 우리가 알고 있던 믿음에 금이 가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풀리지 못한 문제들이 한가득이고 싸워야 할 적이 많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국은 여자가 살기 편한 나라일까?"라고 묻는다면, 돌아오는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구는 한국만큼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 하기도 하고, 남자들도 피해를 받는다고 역차별이라고 하며, 누구는 좋아진 것은 맞으나 아직도 불편함이 많다고 한다. 또 누군가에겐 악몽 같은 나라가 될 수 있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시각이라고 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엔 바뀌어야 하는 문제가 많다는 것. 오랜만에 본 여성 다큐멘터리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난 이 작품이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리뷰 글을 남긴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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