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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휘발되고 감정은 남는다

by 올디너리페이퍼

"나 좀 외로운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에 "그럼 내가 메일 보내줄까?"라고 물었다. 다른 부서의 직원이었던 그는 나와 짧지 않은 시간 같은 직장에서 이따금 같이 일을 하던 이였는데, 그렇다고 다른 누구들에 비해 특별히 긴 시간도 아니었고, 직장 동료 이상으로 특별히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다. 몇 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도 사무실 밖에서의 시간을 처음으로 보낸, 그마저도 개인적인 회동이 아니라 여럿의 회동으로 만난 밤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무슨 용기에서였을까. 그렇게 2020년 어느 날부터 2023년 뜨거운 여름의 어느 날까지 한 사람만을 위한 주간 메일링은 이어졌다. 작년 여름이 뜨겁고 무더웠지만, 2023년의 그 여름도 퍽이나 뜨겁고 갑갑해 하루가 버거웠다. 물론 그 메일은 1년 52주를 꽉꽉 채우지도 못했고, 한 번은 약 10달간의 긴 공백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100통이 넘는 편지를 손글씨가 아닌 전자문서로 보냈다. 그리고 또 간간히 답글을 받아 보았다.


깊이 넣어 두었던 메일들을 하나씩 꺼내 고이 이곳에 널어놓았다. 바람도 쐬이고 햇빛도 받게 하고 싶었다. 갭이어를 맞이해 진행한 글쓰기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동시에 추억팔이의 일환이었는지도 모를 연재를 끝냈다. 메일을 하나씩 열어 읽다 보니 어느 것은 그때의 기억이 살포시 떠올랐고, 어느 것은 완전히 새로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땐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을 만큼 생경한 내용이었다.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그렇게도 처음일 수 있다니.


그렇게 열심히 숨어드는 기억과 달리 대부분의 감정들은 여전히 또렷이 남아 있다. 기억이 아닌 감정의 잔재에 대해 놀랐던 적이 또 있다. 몇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크고 작은 조직의 변화와 맞물려 진행하는데도 변수가 많았다. 프로젝트 자체도 나름 커서 새롭게 시도해야 하거나 고민할 부분이 많았다. 이래저래 그때의 나에게는 참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한 사람이 있다. 밥도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 눈에 띄게 살이 쪽쪽 빠졌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구체적인 상황은 몇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망각의 동물인 인간의 타고난 재능에, 유난히 인간스러운 나의 기억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오히려 감사를 표하고 싶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표현을 해도 좋을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어쩌다 메일함에서 그때 주고받았던 메일 제목과 그 사람의 이름이 나열된 것이 보였는데, 정말 순간적으로 깊은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도 당시에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는데, 그보다 그런 상태의 내가 너무 낯설어 당황했다. 이게 무언가 싶어 잠시 멈추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나하나의 사건과 사연에 대한 기억들은 잊힌 듯이 어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지만, 그리고 그중 일부는 영영 찾지 못할 미지의 곳으로 떠밀려났지만, 그때의 감정까지 잊힌 것은 아니었구나. 여전히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자신의 모양을 확연하게 드러낼 만큼 살아있구나 싶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는 엄마가 평생을 지녀온 트라우마를 알게 되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어떠한 것이 하나의 상처나 회피대상이 아닌 일생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관련된 기억들이 구석구석 새겨져 시간이 지나고 눈을 감는 것만으로는 잊히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은 일반명사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싫은 걸 넘어 감각으로 머리와 가슴에 인장처럼 남아있었다. 그것들이 순간순간 엄마의 생각과 행동에 얼마나 자주, 크게 영향을 미쳤을까.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적당한 말을 찾아내지 못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혹 특별히 강력한 기억들이 있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다가 아주 가끔 불현듯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보다는 감정이, 기억과 관련된 감정이 오래, 강렬하게 남아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간혹 감정이 무디어진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때도 있다.


순간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휘둘리며 살았던 그때는 몰랐던 나의 상태가 변화해 가는 것이 메일을 되짚어가는 지금에서야 보였다. 편지를 쓰면서 또 받으면서 의도는 하지 않았지만 나의 그때가 기록된 것과 같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기억을 되살렸다. 결과적으로 특별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한 사람만을 위한 그 메일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와 나, 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메일과 시간을 계기로 그는 내가 갭이어를 잘 보낼 수 있게 해 준 이들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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