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정각이면 감성을 자극하는 오프닝 음악과 함께 이문세의 별밤이 시작되었다. 교복 자율화 시대의 고교생들에게 별밤은 최고의 감성 놀이터였다. 그런데 고2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라디오를 타고 나오는 별밤의 시그널이 감미롭지 않았다. 갑갑한 마음 때문인지 시시덕거리는 라디오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몇 주였던가? 몇 달이었던가? 그런 밤이 꽤 오래 지속됐었던 것 같다. 그날 뉴스에서는 이번 주말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기상캐스터가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엔 1학기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어느 초여름 밤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날이 벌써 까마득한 몇 광년이 지난 것 같이 느껴졌다. 고작 몇 달이었겠지만... 아직 덜 자란 머릿속엔 다 담을 수도 없는 수많은 공상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와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인간, 인생, 고통, 죽음, 우주와 신, 존재, 부모와 자식... 밤마다 나를 괴롭힌 것들이다. 무슨 심오한 진리를 찾는 철학자 흉내를 내었지만, 실상은 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2년간 지속된 어머니와의 지독한 갈등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조종되지 않는 것에 분노한 어미가 그 자식을 굴복시키기 위해 독을 품고, 그것에 결사 항전을 맹세한 자식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자식은 먹고, 자는 기본권을 항전의 상대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싸움일 뿐이었다.
이런 속박과 갈등의 연속이 정말 인생일까? 이런 인생이 살아야 할 가치가 있을까? 인생이라는 것이 매일 먹고, 자는 의미 없는 반복이고, 그저 허망하고 허무한 것뿐이었다. 그날 밤은 그 고통의 몽상이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뒤척이던 베개맡에서 일어났다. 문득 더 이상 항전의 대상에게 의존해서 사는 허무한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감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수중에 2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있었다. 작은 백팩에 일기장과 우산 하나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필요했을 뭔가를 담았다. 그리고 4층 베란다에서 밖으로 내 던졌다. 그리고 조용히 집을 걸어 나왔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어두컴컴한 저 먼치에서 어렴풋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란 길고양이마냥 내 달렸다. 차가 다닐 수 없는 한강변의 그린벨트 뒷산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소리를 떨쳐 버리려고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난 자유를 얻었다.
아내의 베프는 오래전 이문세 님의 팬클럽 마구간의 연임 총무였다. 그 친구가 보내준 별밤지기 이문세 님의 90년도 싸인 엽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