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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Dec 22. 2020

혹시, 주민등록증 있어요?

개똥 철학자의 가출 (3)

교회 한 구석에 작은 방이 있었다. 내가 잘 곳을 안내해준 목사님인지 관리인인지 모를 분이 의심의 눈초리로 묻기 시작했다. 충주엔 왜 왔으며, 무슨 일을 하냐고. 잘 곳도 없이 어떻게 여행을 다니냐고 꼬치꼬치 캐 물었다. 미리 생각해 놓은 대답이 있었다. 전문대에 다니는 20살 학생이며, 집에 갑자기 힘든 일이 생겨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혼자 여행을 떠나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일은 월악산에 갈 거라고 했다.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다시 2차 질문이 쏟아졌다.


"어느 대학에 다녀요? 집엔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아.. 대학 이름을 생각해 놓지 않았다. 순간 아는 형이 작년에 인하공전에 합격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인하공전에 다녀요. 집안일은 말씀드리긴 좀 어렵고요..."


이제 여기서 하룻밤만 자고 내일 떠나면 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위기의 질문이 날아왔다.


"혹시, 주민등록증 있어요?"


정확히 그는 내가 가출 청소년 일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일 지나 않아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지 못한 미성년자, 진짜 가출 청소년이었다.

 

"갑자기 생긴 힘든 일 때문에 마음 정리하려고 정신없이 나오느라 주민등록증을 못 챙겨 왔어요."


못 믿는 눈치였으나, 더 이상 추궁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는 잘 자고, 산에도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더 충주에 머물 거라면 하룻밤 더 자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교회의 청년부 모임에도 참석하면 좋겠다고 초대를 했다. 나를 20살 청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러겠노라고 말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월악산에 가기 위해 교회 숙소를 나서는데, 어젯밤 나를 위기에 처하게 했던 그분이 나타났다. 간단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나를 바로 앞의 설렁탕 집으로 데려갔다. 산에 가려면 든든히 먹고 가야 한다며. 만 하루 만에 먹는 밥었다. 이제는 그분의 얼굴도, 내가 잠을 잤던 그곳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아침 내 허기를 채워줬던 그 설렁탕 한 그의 온기는 내 마음에 남아있다. 누군가 선의로 베푼 밥 한 그룻이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밥 한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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