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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Jan 26. 2021

개똥철학하고 앉아있네.

개똥 철학자의 가출 (8)

해가 졌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도 모두 사라지고, 집집마다 불빛이 들어왔다.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림은 지루했다. 누군가 통화를 하고 나처럼 남은 돈을 남겨두고 가기를 기다리며 부스를 오고 갔다. 한참이 지나고서 한 통화 가능한 동전이 남은 수화기를 들 수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오셨기를 간절히 바라며 컴컴한 부스 안에서 버튼을 눌렀다. 담임 선생님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집으로 올 수 있도록 동과 호수를 알려주다.

 어른들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은 권위적이고 무서웠다. 나이도 꽤 많아 보였다. 그러나 집에서 만난 선생님은 부드러웠다. 사모님과 고등학생인 딸이 있었다. 내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밥을 챙겨주셨다. 배가 너무 고팠기에 꾸역꾸역 차려주신 밥 한 끼를 다 먹었다. 다 먹을 때쯤 아버지가 도착했다. 내 전화를 받고 나서 바로 집으로 전화를 하던 것 같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아버지 그리고 나는 서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 앉아 있었다. 사모님과 딸은 작은 방의 문을 빼꼼히 열고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선생님과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날리 만무하다. 잠시 동안의 훈계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집을 나가기 전의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심적 고통에 대해서, 억압으로부터의 몸부림에 대해서... 내 심연 깊은 곳의 것들을 다 끄집어내어 쏟아냈다. 지난 일주일 간 아프게 고뇌한 모든 것들을 제발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내 이야기가 다 끝나잠시 침묵이 흘렀다. 담임 선생님이 던진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개똥철학하고 있네."


지난 몇 개월의 치열했던 나의 몸부림과 지난 한 주간의 고뇌와 방황은 '개똥철학' 한 마디로 정의되어 버렸다. 그 단어가 주는 충격이 너무 커서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훈계와 조언이 이어졌지만, 멍하니 앉아 '개똥철학'이라는 단어와 싸움을 했던 것 같다. 긴 훈계가 끝나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한동안은 집안에 이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리라.

30년 전의 일이지만, 난 여전히 그 단어 '개똥철학'이 생생하다. 어쩌면 18살의 고등학생의 고뇌와 사색은 오십이 넘은 어른들에겐 어쭙잖아서 어디에도 쓸모없는 개똥 같은 것이다. 그래도 그때 나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공감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이 시대는 언어를 통한 공감이 어떻게 사람들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지 설명하는 강의가 차고 넘친다. 나는 경험과 강의들을 통해 공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내 아이들에게 공감보다는 훈계를, 따뜻한 수긍보다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내가 받은 그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할 땐 흠칫 놀란다. 나의 부모 세대는 배우지 못해 그랬으니 변병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난 그렇지 않다.

의미 있는 변화는 한 번의 경험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속적인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공감받았을 때 누군가를 공감하고, 또 자기의 아이들을 공감하리라. 내가 변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그때의 내게 '개똥철학'은 상처지만, 지금의 나에겐 반성이고 변화여야 한다.



<사진출처 : 응답하라 1988 제3화 장면 중에, 내가 선생님 집에서 먹었던 밥상이 동그랬으니 저런 느낌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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