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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Jan 28. 2021

교실의 폭력

개똥 철학자의 여행 (9)

창밖에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방의 책상 앞에 앉아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보고 있자니 2주 전의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학교에선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시험을 치렀다. 내 가출 여행이 시험이나 공부에서 도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기말고사를 마치고 학교의 일상이 시작되니 나와 친하지 않던 반 아이들은 나를 이상히 여겼다. 교회나 다니는 범생이가 무단가출을 한 것도 그렇고, 가출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맞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당시 남자 고등학교의  실상은 처참했다. 담배도 좀 피고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안팎으로 싸움질을 하고 다니는 애들이 종종 가출을 했다. 짧으면 삼 사일, 길면 일주일을 넘기기도 했다. 내 기억에 돌아오지 않은 놈은 없었다. 그러나 걔들이 학교에 돌아오면 패턴은 똑같았다.


'야. 너 ㅇㅇㅇ! 앞으로 나와! 이 새끼 여기가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안 오는 동네 가게야? 엎드려 벋쳐!'


그리고는 허벅지가 찢어져 피멍이 들도록 일명 빠따 타작이 시작되었다. 그 정도면 다행이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반항 끼를 보이면 무차별 발길질과 따귀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렇게 얻어터지고 다시 가출을 안 하는 것이 용할 정도로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그래야 십 대의 아이들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무지막지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


그런 야만의 교실에서 일주일이나 무단가출을 하고도 한 대도 맞지 않았으니 껄렁한 반 친구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나 보다. 쉬는 시간에 그 비결을 물어보러 오는 놈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개똥철학'을 외쳤던 선생님도 다른 가출자와 나를 다르게 대했던 걸 보니 나의 고뇌를 존중해 주었나 보다. 그렇지만 나처럼 용기 내어 찾아가 얘기하지는 못했을 지라도 나름의 인생의 방황을 했을 다른 친구들에게 몽둥이와 발길질이 아닌 그 이유를 물어봐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여전히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첫째가 대여섯 살 무렵까지는 약간의 체벌은 훈육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내가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그렇게 체득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큰 아이를 훈육한다고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몇 대씩 때리면서 그 아이의 눈을 읽게 됐다. 초점을 잃고 그냥 빨리 이 시간만 지나가기를 바라는 조그만 아이의 눈 속에서 중고교 시절의 교실의 폭력이 겹쳐졌다. 내 딸의 눈을 보며 어떠한 폭력도 사람을 진심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순간 난 훈육을 위한 체벌 - 그러나 실상은 폭력 - 을 멈췄다. 통렬히 후회하고 반성했다. 때려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로도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 


폭력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미화될 수 없다.



<사진 출처 : 영화 '바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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