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드라마를 알게 되었다.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것처럼
숨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올라오는 겨울이 되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요즘처럼 춥디추운 겨울에 시작해 화사한 봄볕 아래서 끝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이맘때쯤 1화를 보기 시작해서 아주 천천히 보다가 봄이 올때쯤 마지막화를 보면 그 감상이 남다르다.
나는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사실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남게 되는 일이 있어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저씨를 인생드라마로 꼽은 것이 기억나 처음 보기 시작했다. 1화를 플레이한 후 나는 거의 쉬지 않고 마지막화까지 단숨에 봤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푹 빠져서 본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가끔씩 이 드라마가 생각날 때가 있다.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하나의 노래를 알고 있다.
한 사람은 그 노래의 제목과 작곡가가 누구인지, 어떤 구성과 흐름을 가져가는지, 음악의 역사 속에서 이 노래가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또 한 사람은 노래의 제목조차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수도 없이 이 노래를 들었고, 머리 속에서 종종 선율이 떠올라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흥얼거리고는 한다.
여기 하나의 노래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다 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안다'라는 같은 단어가 지닌 의미는 두 사람에게 너무나도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는 '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또 드라마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야기다. 누군가 나를 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기도 한다. 가족이나 부부지만 서로를 잘 모르기도 하고 낯선 사람이지만 도청을 통해 누구보다 깊은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채기도 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험담을 알아도 모르는 척 하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나를 마주하는 사람이 나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한다.
똑같이 '안다'라고 표현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과 어떤 사람의 본질을 '아는' 것은 전혀 결이 다른 의미다. 지안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저 정보를 아는 것이다. 하지만 지안이 왜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아는 것이 그 사람의 본질을 아는 것이다. 극중 동훈의 대사처럼 그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어지게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서로를 깊게 알고 이해하는 관계는 어찌 보면 애정이나 혈연의 관계보다 훨씬 큰 위안이 된다. 극 중에서 지안과 동훈은 그런 상호 이해의 관계를 잘 보여줬다.
좋은 드라마는 종종 여운이 긴 마지막을 통해 보는 깊은 울림을 준다. 나의 아저씨가 보여준 엔딩 역시 그랬다.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드라마 이후의 두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팬들 사이에서는 이 이야기가 한동안 화제가 됐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 넓고 넓은 세상 속에 내가 알고 또 나를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제 두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 전과 같은 의미가 아닐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이 세상의 의미를 바꾸고 더 나아가 그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내 삶의 의미까지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나의 아저씨를 본 이후 나와 이 드라마의 관계 역시 극 중 두 주인공의 관계와 비슷해졌다. 이제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이 드라마를 보게 되거나, SNS에서 누군가 나의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보게 되었을 때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인생드라마 얘기를 꺼낸다면 나는 반드시 나의 아저씨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혹시나 같은 자리의 누군가도 이 드라마를 봤다고 하면 아마 마지막 장면의 동훈처럼 환한 미소로 그와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좋은 드라마 하나를 알게 됐다. 작가가 누구인지 감독이 누구인지 배우가 어떤 필모를 가졌는지는 안다는 뜻이 아니다. 촬영 기법의 기술적인 이야기나 이야기의 주제의식 같은 것을 잘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언제 우연히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좋은 친구를 알게 된 것처럼, 기분 좋을 때 흥얼거리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알게 된 것처럼, 나도 좋은 드라마를 알게 됐다는 의미다.
* 본 글은 개인 인스타그램에 직접 작성했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