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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을 사람 Sep 22. 2021

미숙함을 성품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

이제 겨우 '유아'입니다.


입학식 날 보니까 ●●이는 소리도 잘 지르고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해.

놀이터에서 보니까 ○이는 공격적이고 장난이 너무 심해.


... 이런 말 들으니까 ●●이랑 ○이 담임인 나는 정말 속상해.

우리 ●●이는 다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 무슨 이유냐고요? 우리 이가 아직 유치원생이거든요.


이 글은 '아이니까 모두 괜찮다.'는 취지의 글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문제행동은 아이 본인을 위해서라도 빨리 교정해야 한다는 주의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숙한 아이의 행동을 보고 문제아로 낙인찍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유아들은 가끔 똥이 정말 무서워서 피하기도 한다. 뭐 이런 걸 무서워해 싶겠지만, 세상에 무섭고 두려운 것이 한가득이다. 유아기는 물이 든 컵을 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 물이 쏟아진다는 걸 깨닫는 시기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유아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 5세. 유치원 최고 형님의 나이죠.


유아의 인생살이 많아봐야 만 5년. 걷고 달린 시간은 그보다 1년이 더 짧고, 문장으로 말할 수 있게 된 시간은 걷고 달린 시간보다 더 짧다. 아이들은 경험해본 것보다 처음인 것이 훨씬 더 많다. 이 당연한 걸 어른들은 가끔 잊는 것 같다. 진짜로 아이가 몇 살인지 나이를 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유아라는 걸 잊어버리는 것이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동안 이걸 가장 많이 깨닫는 순간이 학부모와 대화할 때였다.



 입학식 날 보니까 ●●이는 소리도 잘 지르고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던데, 교실 분위기를 흐리거나 피해를 주지는 않나요? 걱정스러워서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가장 처음 만나보는 입학식 날 짧은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이는 만들고 있던 미술재료가 망가졌다며 던지고, 소리 지르며 엉엉 울었다. 이후로 이는 3월 내내 아침마다 울었다. 울음을 그쳤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다시 울었다. 내 옆에 꼭 붙어 밥을 먹었고, 때로는 선생님도 밉다고 울었다.

그리고 동동이도 울고, 미미도 울고, 뿡뿡이도 울었다. 심지어 용용이는 부원장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몇 바퀴나 돌았다. (나도 울었다.)


그렇다. 우리 반은 다섯 살(만 3세) 반이었다! 껄껄.... 껄....


●●이가 입학식 날 미술재료를 던지고 소리 지르며 울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는 '선생님'을 만난 것도, '교실'에 들어와 본 것도, 어른들 사이에서 '활동'을 해본 것도 모두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유치원에 입학한 동동이, 미미, 뽕뽕이, 용용이도 적응기간인 3월엔 눈물 파티를 여는데, 어린이집 경험도 없던 ●●이는 갑자기 기관 생활을 하려니 얼마나 어렵고 무서웠겠는가?

(●●이는 적응하고 나니 우리 반 에이스가 되었다. 예쁜 내새끼.......)


유아는 경험해본 것보다 처음인 것이 더 많다고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그 처음의 시기도 아이들마다 다른 법이다.


●●이에 대해 걱정하는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전화한 학부모의 아이도 유치원 생활은 처음이었으니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볼 수도 있지. 하지만 다섯 살 아이가 유치원 입학한 지 겨우 2주 지난 시기였다. 그 학부모님도 ●●이가 교육기관 생활이 아예 처음이라는 걸 알려주니 바로 이해했지만 2주 동안 섣부르게 ●●이를 문제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속상하다는 거다.


같은 나이,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아이의 성장 속도는 서로 다르다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사전 경험의 중요성이 어쩌고~, 기질이 저쩌고~, 이 시기에는 생일의 영향도 이러쿵~, 환경이 저러쿵~ 아, 할말 너무 많아.)






놀이터에서 보니까 옆 반 ○○이는 공격적이고 장난이 너무 심해.


이 말 뒤에 '우리 아이가 보고 따라 할까 봐 걱정이에요. 7살 때는 다른 반 되게 해 주세요.'가 따라온다.

우리 반 아이를 두고 다른 반 학부모가 한 말이다. 전달받았을 때 엄청 화났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화나네? (험한 말 × ∞) 당신이 뭘 알아요?


○○이는 착하고, 친구도 잘 도와주고, 규칙도 잘 지키는 아이였다. ○○이는 공격적인 아이가 아니라, 성격이 급한 아이였다. 보기에는 키가 커서 발달도 빨라 보여도, 급한 성격에 비해 어휘력이 뛰어나지는 않아서 자꾸 소리 지르게 되는 거라는 걸, 소리 질렀다는 걸 인지시켜주면 친구한테 바로 사과하는 아이라는 걸 그 학부모도 알았을까? 나 정말 반 배정하면서 너무 속상하고 미안해서 혼자 찔끔 울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 생명체인지 아는가?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보면 "이걸 해낸다고?"와 "이걸 못한다고?"의 반복이다. 아이들의 감정은 또 어떻고.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느끼고, 훨씬 더 많이 상처 받는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를 두고 "아직 어려서 그런 거 몰라."라고 말한다. 맞다. 아직 어려서 모른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모른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의 뚜렷한 원인을 헷갈려하기도 한다.(근데 이건 어른도....) 그리고 이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더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아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가 느끼는 속상함, 서러움, 섭섭함과 답답함, 두려움과 초조함이 모두 '화'나 '떼'처럼 보이는 이유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평가나 회피가 아니라  '왜'와 '어떻게'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묻고, 듣고, 말하고. 묻고, 듣고, 말하고. 묻고, 듣고, 말하고. 묻고, 듣고, 말하고. 묻고, 듣고, 말하고....... 벌써 지친다.


나도 안다. 내 아이가 눈에 닿지도 않는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는 걸.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같은 반이면 많이 신경 쓰이고 걱정도 된다는 걸. 그래도 단편적으로 보는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미숙함이 그대로 성품이 되지 않게, 적절한 감정표현과 바른 행동에 능숙해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시켜줘! 당신의 피그말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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