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12월이 가까워질수록 이직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다른 유치원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여기저기 정보도 좀 알아보고, 11월 말엔 고가네도 들어가 보며 어느 유치원에 티오가 떴나 탐색을 하게 된다. 원하는 유치원에 티오가 났다고 해서 기뻐하기는 이르다. 유치원에서 원하는 경력과 내 경력이 맞지 않으면 이력서를 넣어도 바로 컷이다.
3년 차까지가 취업하기엔 최고!
다른 회사들처럼 유치원도 신입과 경력직을 뽑는다. 다만 유치원이 담임으로 가장 선호하는 신입은 경력 1년 이상이고, 경력직은 3년 이하다. 참 이상하지? 신입인데 경력 1년이 필요하고, 경력직인데 신입과의 경력 차이가 이렇게나 적다니 말이다.
경력이 적을수록 이직이 쉬운 곳이 유치원이다. 초임의 경우 담임으로 바로 채용하기도 하지만 부담임으로 선호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서 유치원이 담임을 채용할 때 가장 선호하는 연차는 2년~3년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구인란에 지원대상이 5년 차까지로 쓰여있는 곳도 간혹 보이고, 7년 이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7년차 이상 고경력 교사를 채용하는 경우는 신설 유치원이나 연령 주임급을 뽑을 때 정도? 그마저도 코로나 이후엔 교사들이 설 곳이 더 줄어들었다.
이런 채용 경향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급여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치원 대부분 호봉제를 따르다 보니 고경력=높은 호봉=인건비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 경력 4년 차만 되어도 슬슬 유치원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사립 호봉으로 급여를 주는 유치원의 경우 고경력 교사를 좀 더 뽑기도 하는데... 사립 호봉과 국가 호봉은 차이가 꽤 크다. 나도 사립 호봉을 받다가 국가 호봉인 곳으로 옮겼을 때 급여 차이를 보고 많이 놀랐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처우개선비를 모두 합친 금액으로 월 소득을 서로 비교했을 때맨 앞자리 수가 달라졌으니....
급여에 관련하여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내가 초임일 때 같이 일하던 9년 차 선생님은 월급이 동결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국가 호봉도 아니고 사립 호봉이었다. 그런데도 그 선생님은 이직하지 않고 그 유치원에 근무하고 있던 것이다. 당시 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경력이 많은 교사들은 이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빌미로 월급이 동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었다.
유치원 평교사는 저경력이든 고 경력이든 하는 업무는 비슷하다. 똑같이 자기 반 아이들을 교육하고, 준비하고, 학부모 관리하고, 서류 작업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 경력이나 맡은 연령에 따라 다른 업무를 나누어서 하게 되기 때문에 저경력 교사만 있다고 해서 유치원이 큰일 나지는 않는다. (근데 일을 엄청 잘하길 바라니 큰일이지.)
하지만 우리 안다.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그 노련함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내 초임 때를 돌이켜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다. (맨날 울었지 뭐. 3층 창밖으로 뛰어내릴 생각만 하면서) 20대 초반 사회초년생에게 그 야박한 월급 쥐여주고는 2대 40으로 담임도 시켜, 종일반도 시켜, 서류도 시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알아서 그걸 다 잘하길 바라고... 학부모는 나보다 대부분 적어도 10살 이상은 많아서 학부모는 늘 어렵기만 했다. 안 친한 친구네 큰고모랑 이야기하는 느낌?
정말 모든 게 다 힘들었지만, 당시 가장 아쉬웠던 건 물어볼 고경력 교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래 있던 선생님은 온갖 서류로 늘 바빠서 뭘 물어보는 것 자체가 무서웠는데, 그분이 바로 다음 해에 유치원을 그만두는 바람에 2년 차인 내가 제일 고경력 교사가 되어버렸다! 다른 고경력 교사는 어린이집 분들이었는데 만 2세 이하 영아만 맡으셨던 분들이라 원하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도 겨우 2년 차인데 유치원에서는 가장 언니라서 서류는 또 다 내가 해야 했다.... 정말 지옥 같은 날들이었지... 애들 힘든 건 말해 뭐해... 학부모님들이 전화해서 나를 위로했는데.... 그 아이들 썰로 내가 다 이길 수 있다. (잘 지내냐 아이들아...)
그 힘든 1년을 버티고 났더니 3년 차에 귀인을 만났다. 드디어 경력 많은 선생님들이 오신 것이다. 또 너무 좋은 분들 이어서 그분들께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정말 사랑합니다. 선생님...)
그분들이 아이들에게 기본생활 습관을 지도하는 루틴, 위트 있게 아이들의 집중을 사로잡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큰 유치원으로 이직해서 고경력 교사가 득실거리던 그곳에서는 단기간에 더 많은 걸 배웠고.
유아교육을 공부할 때 비고츠키의 인지발달이론에 대해 배우며 근접발달영역에 대해 배운다. 실제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더 유능한 타인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간극. 그것은 아이들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교사도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여 그 간극을 줄일 수 있게 해 줄 비계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해줄 고경력 교사가 필요하다.
병아리만 모아놓고 알을 낳길 바랄 것이 아니라, 고경력 교사도 설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유아교육에서 놀이가 더욱 중요해지며 교사의 역량이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요즘 세상에, 젊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어린 교사들과 노하우가 쌓인 고경력 교사들이 함께 많은 생각을 주고받는다면 모두에게 윈윈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