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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말까 망설이다, 고민보다 고!

캘리그래피 프리즘

우리 집 마당에 매미들은 올해 유독 늦잠을 잔 모양이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 슬금슬금 온도계가 하늘을 향해 치고 나갈 때면, 작년에 왔던 각설이 마냥 매미들의 구성진 소리가 들리기 마련인데, 올해는 이른 장마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8월 1일을 기점으로 울기 시작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올해는 음력 달력을 볼 여력이 없었기에 8월말까지 그저, 큰 쉼표 하나 찍어놓고 쉬어 가리라 마음을 비웠는데, 오잉? 8월 첫째 주말이 입추라더니, 한밤에 들어오는 공기에 제법 선선함이 묻어났다.


입추 이후에도 여전히 더위가 맹위를 떨쳤던 몇 해의 여름들을 보내고 나니, 입추는 그냥 절기상 구분일 뿐, 가을이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구만 하던 곱지 않던 시선이, 올해는 남쪽 지방의 비 소식과 더불어 구름이 잔잔한 날씨가 며칠 지속되더니, 한낮의 햇빛은 7월 말의 포악함을 없애고 숯을 모두 뺀 가마의 잔열처럼 은근함으로 변했다.

서슬 퍼런 더위도 입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순종자가 된 듯하다.

창 밖으로 늦게 일어난 매미가 곧 다가올 무대 퇴장을 인지한 듯 더욱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지만, 그 기세는 깜짝 선물을 미리 알아버린 어린아이처럼 맥이 빠져 있다.

7월 더위에 지레 겁을 먹고 8월은 '쉬어가는 달'이라고 공표한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더위를 그럴듯한 핑계 삼아 마음 놓고 놀아보자 하는 계획이 선선한 바람에 그 당위성은 힘을 잃었다.


다행인건 2~3도의 온도 차가 무기력을 의욕으로 전환시키는 촉매제가 되었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문제의 결론을 내고 나니, '쉬어가는 달' 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아 '초석을 다지는 달' 로 간판을 바꿔 걸었다.



갈까 말까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과거의 신중한 결정을 다시 번복하는 일이고 내가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할 수도 있지만, 고민의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나니, 결정을 막아서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일순간 무의미해져 버렸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부정이 아닌 방향의 전환이고 늘 그렇듯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계단이기에 지나온 시간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몇달 동안의 분주함과 잠깐씩 느꼈던 결여가 없었다면 지금 양손을 야무지게 쥐고 준비자세를 갖추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망설이던 고민의 시간이 끝났으니 이제 달려보자!  


가을도 그렇게 오자꾸나.

갈까 말까 망설이며 늦더위 흘리지 말고, 여름의 소임을 다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깔끔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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