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프리즘
가을은 쓸쓸한 계절?
누군가는 가을이 쓸쓸한 계절이라고 한다.
푸르다 못해 시린 하늘에 눈물이 나고, 떨어지는 잎사귀에 마음이 내려앉는다고 말한다.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한숨짓고, 잊혀 가는 것이 안타까워 마음을 쓸어내린다고 한다.
곁에서 듣고 있자니 한없이 쓸쓸해 보이나,
이미 그 사람은 봄의 설렘과 여름의 충만함을 한껏 껴안은 채 온전히 그 시간들을 보냈기에,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고 찬란했던 시간들이 잊힐까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가득 찬 기쁨의 맞을 아는 사람만이 비워지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허전함을 알아차릴 테니까.
되풀이되는 관념적인 계절이 아닌, 온몸으로 가을을 담아내는 사람에겐 떨어지는 낙엽에 가을의 쓸쓸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지.
가을은 여전히 설렘으로 가득하다
나의 가을은 지쳤던 여름의 늘어짐을 바짝 당겨주는 고무줄처럼, 사람을 팽팽하게 만드는 영양제다.
나뭇잎을 살랑거리게 하는 바람과 적당한 온도는, 여름 내내 좀처럼 나타나 주지 않던 부지런함을 불러온다.
나른해졌던 손과 발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둔감해진 머리와 감성은 인간극장급으로 전환된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눈 부시게 푸른 하늘에 수묵과 수채화를 적당히 배합한듯한 기가 막힌 구름은, 밑바닥에 머물던 마음을 저 멀리 내달리게 한다.
무엇을 해도, 어디에 머물러도 넉넉히 품어줄 것 같은 가을.
거기에 풍성함의 정점을 찍는 추석이 있어, 여름 더위에 옹졸해졌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여유까지 들어찬다.
이렇듯 딱 좋은 가을!
비록 현실은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삐그덕거리고 팍팍하지만,
줄 타는 어름사니도 줄에서 내려와 땅을 밟는 시간이 있듯이,
추석이라는 공식적인 빨간 날에 기대어 무겁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기에는 딱이지 않는가.
빨간 연휴가 끝나면 마법이 풀리듯 다시 현실로 돌아가지만,
연휴는 현실을 외면한 도피성이 아닌, 굳건히 두발을 땅에 딛고 정면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자양분 인 셈이니, 분명 이전의 우리와는 다른 단단함이 더해 있을 것이다.
@캘리그라피작가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