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마추픽추 #1. intro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페루의 마추픽추!
엉겁결에 남미까지 오게 되었고,
돌다 보니 페루라는 나라에 도착했으니
마추픽추는 꼭 한번 둘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유럽의 흔하디 흔한 관광명소처럼
한방에 메트로와 버스로 편하게 도착하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강원도 전방부대보다 더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이 곳까지 가는 건
실로 힘든 여정의 연속이었다.
마추픽추 #2. 어떻게 여기까지 도착했는가?
마추픽추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Ollantaitambo)라는 작은 마을까지 가서
다시 거기서 열차로 아구아스 깔리엔떼(aguas caliente)로 도착 후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로 올라가는 루트를 택했다.
여정 중간중간에 삐싹(pisac)이라는 곳도 둘러보고
오얀따이땀보의 일부 유적도 한번 올라가 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오전 9시경 출발해서 10시간이 지난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아구아스 깔리엔떼에 도착했다.
tip) 물론 쿠스코에서 직접 아구아스 깔리엔떼까지 가는
파란색의 페루 레일(Peru rail)이라는 열차도 있다.
금전적인 여유가 많다면 한번 타 보시길 바란다.
마추픽추 #3. 마추픽추의 팔할은 바로 날씨의 힘!
어딜 여행하든 좋은 날씨가 곁들여진 장소는
여행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을
가슴속에 안겨 주는데,
마추픽추만큼은 그 추억의 크기가 배가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해 들은 정보에 의하면,
마추픽추 쪽의 오전 날씨는
흐리고 안개가 끼던지 완전히 화창해서
탁 트인 마추픽추의 전경을 보는 건
'복불복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해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날씨를 바꿀 힘은 없는 한낱 인간이기에,
그저 하늘의 배려(!)를 바라고
아침 일찍 마추픽추로 향했다.
일요일 새벽부터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고
세수도 대충한 채
마추픽추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고,
나도 차례에 맞춰 기다리다 드디어 버스에 탑승하여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마추픽추를 향해 가고 있었다.
tip) 마추픽추 입장시간이 오전 8시 전후이기 때문에,
그 곳에서 일출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날도 더워지고 사람도 많으니
조금 사람이 덜 붐비는 오전 시간에
마추픽추를 볼 것 강추!
입구에서 기념사진 몇 장을 찍은 후,
입장시간에 맞춰 마추픽추로 입성했다.
조그만 사잇길로 계속 들어갈 땐 몰랐지만,
등산로처럼 난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내 눈 앞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중세시대 유적이
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 하여 마. 추. 픽. 추.
눈 앞을 가리는 안개는커녕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마추픽추.
남미의 여러 여행지보다 더욱 남미스러운 마추픽추.
이 곳이 왜 세계 7대 불가사의였는지를
너무나도 알고 싶은 마추픽추.
그 앞에 내가 있고, 내 앞에 마추픽추가 살아 숨 쉰다.
꼬박 하루 걸려 넘어온 고생 때문에 마추픽추의 장엄함을 폄하할 수는 없다.
마추픽추 #4. 3000m 마추픽추 산 등반!
원래는 와이나 픽추에 가고 싶었는데,
1일 입장객 제한이 있어 예약자만 갈 수 있다 하여
살짝 실망하였다.
마추픽추를 좀 더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마추픽추 산 등반'을 했는데
무식함이 절로 드러났던 경험이었다.
산이라면 벌레보다 싫어하던 내가
남미까지 가서 그 높은 산을 갈 줄이야...
원래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턱까지 차는데
그 상황에서 1000미터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건
어지간한 체력이 요구되는 것임은 뭐 당연한 일일 테지만,
입구에서 파는 물이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은 건
다시 생각해봐도 미친 짓이었음이 자명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땀범벅을 한 몸으로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산 정상과 내 저질체력을 원망한 채
눈물을 머금은 채 거의 기다시피 산에 올라갔다.
드디어 산 정상에 도달했다!
등산 마니아들의 산을 정복한 후의 쾌감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던 순간.
마음 같아서는 바로 그 자리에 드러누워 1시간이고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여행객들이 좋은 자리는 다 선점했고
남은 자리는 구석 낭떠러지뿐이라 누울 수는 없었지만,
정상에서 만끽하는 마추픽추는
또 다른 감동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마추픽추 #5. 스치듯 안녕!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산을 내려와
다시 한 번 마추픽추를 보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곳과
아쉬운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햇빛 눈이 부신 날의 이별은
작은 표정도 숨길 수가 없다는
20년 전 R.ef가 부른 '이별 공식'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그 순간 내 마음이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알프스 자락의 여운을 남기며 떠난 스위스와
호탕한 웃음이 많은 스페인을 떠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 웬만하면 떠나기 어려운 남미에 왔고
마음을 울리는 유적에 깊은 마음의 울림을 느꼈기에,
마추픽추를 떠나는 마음이 괜스레 무거워졌다.
멀다고 하여 혹은 오기 힘들다고 하여
두 번 갈 수 없는 건 아니다.
마추픽추를 한번 더 보기 위해서라도,
아니 페루를 한번 더 느끼기 위해서라도
남미는 또다시 갈 것이고
그러기 위해 오늘도 책을 찾아보고 돈을 모으며
스페인어 공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