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도 알프스를 품는다
스위스에 가면 알프스의 장관을 느낄 수 있다(0)
알프스의 장관을 보려면 스위스로 가야 한다(X)
: 이런 명제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궁금한 분들은
지금 당장 유럽 지도를 펼쳐보시라!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모두 걸치고 있다.
다만 스위스가 알프스 산맥에 폭 파묻힐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라
우리의 생각에는 '스위스가 곧 알프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리라.
프랑스 여행 중...
샤모니 몽블랑(Chamonix-Mont Blanc)이라는 곳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5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산에는 꽃이 피어 있었고,
여름같이 길고 긴 낮 길이에,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으며
심지어는 눈까지 흩날리는 4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몽블랑 #1. 날 반겨준 아주 살짝 따사로왔던 봄햇살
때는 바야흐로 5월 중순을 훌쩍 넘기던 시점.
안시에서 열차를 타고 1시간 반 가량 지나니 도착한
조그마한 도시,
스위스처럼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프랑스판 알프스, 샤모니 몽블랑에 도착했다.
제대로 아침도 먹지 못해 몹시 허기졌지만
끝없이 펼쳐진 알프스의 장관을 보다 보니
이내 배고픔도 다 사라졌다.
만년설이 덮인 산 정상 아래로는
더 없이 봄다울 수 없을 초록향연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몽블랑 #2. 저녁에 들은 bonsoir, 근데 대낮?
유럽은 이미 3월 말부터 서머타임이 진행 중이었다.
나라에 따라 낮시간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5월의 유럽에서는 대략 아침 6시 반쯤 해가 뜨기 시작해
밤 9시가 넘어서야 노을과 함께 해가 진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저녁 7시에 해가 중천에 떠 있었으며
과연 이 시간에 하루를 마무리 지어도 되는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비교적 고지대에 있는 샤모니 몽블랑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지막 열차를 타고 내려오던 저녁 7시가 다 된 시각에
프랑스 역무원으로부터 들었던 'bonsoir(저녁 인사)' 가
어찌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몽블랑 #3. 가을 기억
샤모니 몽블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고 보드라웠다.
바깥에서 어느 정도 이런 바람을 쐬는 것이
더 기분이 좋겠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산 정상을 향해 올랐는데,
11월 이맘때 우리나라에서 부는 바람과
그 느낌이 비슷했다.
다만,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그 날
유럽의 단체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산에 오르던 사람은 거의 없었고
피부색과 옷차림이 그들과 달랐던 동양 젊은이 하나를
호기심 있게 쳐다보고 있었다.
몽블랑 #4. 2015년, 어느 이른 겨울 같던 몽블랑의 하루.
산 정상에 올라가니 진눈깨비가
어느덧 눈으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겨울옷은커녕 장갑도 없던 나에겐
오늘은 그야말로 쥐약 같은 날씨.
이왕 올라가던 정상인데 여기서 그냥 내려가기도 아깝고,
그냥 이대로 올라가자니 너무 추워서
몸 컨디션이 걱정되어
결국 어느 정도 산자락이 보이는 곳까지만 올라가기로
나 스스로와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몸은 덜덜 떨려오고 눈 맞으며 올라가기 더욱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뿌듯하다는 성취감이 더 컸다.
여름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 눈을 맞으며 여행한다는 것도,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알프스 산자락의 한 곳이라는 것도,
그토록 바랐던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까지
모두 모두 내겐 큰 의미였고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흰 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몽블랑(mont blanc)'에서
눈이 덮인 알프스 산자락을 직접 보는 것,
생각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훗날, 눈 덮인 이 곳을 배경으로
스키나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또 다른 모습의 나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