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는 덤!
줄곧 아르헨티나의 추운 지역을 여행한 나에게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폭포,
가벼운 옷차림만으로도 여행이 가능한 이과수는
내 기분을 충분히 밝게 해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여기서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과수 폭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었는가?
내 바람과는 다르게 이과수는 공항 출구를 나오자마자
크나큰 실망을 안겨 주었는데...
도시 전체가 엄청난 습기로 둘러싸여 있다.
숙소 침대 한편에 널어놓은 빨래는 이틀이 지나도
마를 생각을 안 한다.
남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물가는 비싸다.
열대지방에 걸맞게 수시로 폭우가 내린다.
이런 요인들이 내 소중한 여행과 추억을 망칠 순 없다.
숙소에 도착해 짐 정리 후 옷을 갈아입은 나는
뜨거운 햇살과 쏟아지는 물줄기를 만나러
이과수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1. 브라질로의 여행
이과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걸쳐있기에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브라질 쪽에서 보는 이과수 폭포는
트래킹 코스가 다소 짧아
오후에 바로 브라질 땅을 밟게 되었다.
tip) 엄연히 국경을 통과하는 여행이므로,
브라질 방면 이과수를 가려면 여권을 꼭 챙겨야 한다.
이과수 버스터미널에서 30여 분가량 지나면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경이 나오고
여기서 간단한 여권 검사를 거치면 바로 브라질!
(당일로 왕복하는 경우 브라질 입국도장은 안 찍어줌)
#2. 브라질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
헤알(브라질 화폐단위)이 없는 관계로
하는 수 없이 숨겨놓은 달러로 결재를 했다.
(브라질 쪽으로 여행시 필요한 만큼의 헤알은 챙길 것)
폭포가 워낙 넓다 보니 내부에도 셔틀버스가 있다.
드디어 이과수를 내 품에서 느끼는구나!
몹시 설레고 행복한 긴장감에 나는 행복했다.
폭포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물보라가 조금씩 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여벌의 옷은커녕 젖은 몸 닦을 수건도 챙겨 오지 않은
내 무지를 탓할 수밖에... ㅠㅠ
내 옷보다 카메라, 핸드폰이 안 젖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당시엔 그게 무슨 대수냐 싶었는데
여행 계획이 있다면 수건, 다른 옷을 꼭 챙기시길 바란다.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걷다 보니
여행객들이 많이 모여있는 몇몇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이과수 폭포의 장엄함을
카메라에 담았다.
벌써부터 이과수의 장관을 느끼는 건가?
브라질 땅을 밟았다는 어쭙잖은 우쭐함까지 더해져
트래킹을 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 이
점점 가까워진다.
시나브로 젖어가던 내 옷은 어느새 빨랫감이 되었고,
이제는 옷보다 카메라를 걱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끝까지 가서 그 물살을 느껴보리라 결심한다.
이과수 폭포에서의 첫날.
생각보다 많은 감동과 대자연을 가슴에 품은 채
숙소로 돌아와 습기 머금은 눅눅한 밤을 보냈다.
#3. 이과수 폭포 앞에서의 좌절
이과수에 도착한 첫날부터 뜻하지 않게 감동을 한 후
아르헨티나의 이과수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보트 투어도 하고
더 멋지고 드넓은 이과수를 느껴본다는 설렘에
아침부터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여유 현금이 다소 부족해
눈물을 머금고 매표소 근처 ATM기로 찾아가
돈을 인출하려는데
(아르헨티나는 암달러가 활성화된 나라로
카드로 현금인출시 아주 손해)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인출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뜬다.
하는 수 없이 매표소에 가서 신용카드를 내밀었는데
심지 굳은 직원은 'no credit card, only cash'라는
지독히 로봇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ㅠㅠ
일단 현금이 필요하기에
입구 앞에 있는 직원에게 짧은 스페인어로
공원 내부에 있는 현금인출기오 가서
돈을 찾아오겠다 말하고
맨발에 땀나도록 뛰어 돈을 인출하려 했지만...
역시나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돈 몇 푼이 모자라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그 대자연의 장엄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현실에
아르헨티나 자체가 싫어지기까지 했다.
상점에 가서 여권을 맡기고 돈을 꿔달라고도 말했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었다.
심지어 여권을 담보로 현금을 요구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직원들도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미련이 남아 출입구 앞에서 계속 서성대는 아시아 청년이
어찌나 안쓰러워 보였던지
직원 하나가 나에게 오더니 자초지종을 물었다.
입장료 몇 푼이 모자라 공원에도 못 들어가는 내 상황을 들은 직원이
지금 내 수중에 얼마가 있는지를 물었고,
내 말을 듣자마자 나와 함께 매표소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매표소 앞에서 또 다른 직원과 잠깐의 얘기를 나눈 뒤
내게 160페소의 돈만 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아르헨티나 자국민들의 입장료는 160페소,
나 같은 외국인 입장료는 그 배 가까이 되는 300페소다)
즉, 나를 자국민으로 살짝 둔갑시켜준
센스 있는 한 직원의 기지가 여행객 하나 구해준 셈^^
그나마 당시 180페소라도 갖고 있어 다행이었다.
비록 이 글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날 도와준 융통성 가득한 이과수의 직원...
muchas gracias!
#4. 아르헨티나에서 본 이과수 폭포
역시 명불허전이다.
어제 브라질로 넘어가서 본 이과수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일단 트래킹 코스가 위아래로 나뉘어 있고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보트 투어를 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할 만큼 규모도 웅장하다.
폭포는 모름지기 위에서 보면 멋질 것이란 생각에
위 코스인 'upper trail'로 향했다.
폭포의 거대한 물살과 뜨거운 햇살이 만나니
폭포를 가로지르는 무지개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한국에서 바라보던 흐리멍덩한 무지개가 아닌
눈 앞에 펼쳐진 일곱 빛깔 무지개로 인해
내 마음은 더욱 다채롭고 행복해졌다.
아침부터 뜻하지 않은 마음고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으로 보트를 타러 갔다.
악마의 목구멍까지 배를 타고 가면
엄청난 물폭탄을 맞기 때문에
카메라, 핸드폰은 반드시 방수팩을 준비하고
여벌의 옷을 챙길 것을 권한다.
여행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 물이 적당히 차서
보트도 재밌었고 충분히 즐길 만큼의 물을 맞았는데,
이틀 전까지 폭우가 내려 어제는 보트 운행이 없었단다.
역시... 여행은 날씨 운이 따라줘야 한다.
보트도 타고 물벼락도 맞아가며
악마의 목구멍을 둘러싼 왕대박 무지개도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에서의 이과수 폭포.
꼭 가시길 권한다! 두 번도 좋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다 젖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고,
어린 시절 꿈꿔왔던 일곱 빛깔 화려한 무지개를
눈 앞에서 실컷 볼 수 있어 행복했으며
그 물폭탄에도 끄떡없던 내 핸드폰에게 감사했다.
저녁이 다 되어 돌아온 숙소에서 간단히 샤워 후
나만의 멋진 저녁을 먹고
눅눅해진 빨래를 벗 삼아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5. 이과수 여행 tip
* 2박 3일 코스를 우선 생각하고
첫날은 브라질 쪽, 둘째 날은 아르헨티나 쪽을 둘러보자.
* 이과수 폭포 입장료는 현금으로만 받으니,
여행 전 꼭 여유자금을 챙겨가자.
* 열대기후이다 보니 비가 자주 온다.
비가 많이 오는 날 혹은 그 다음날은
보트 투어 자체가 없을 수 있다.
* 이과수 국립공원 내 식당은 좀 많이 비싸니
가방에 먹을 거 그득그득 넣어가자.
*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버스로 36시간 소요된다.
이 곳에서 오가는 분들은 그냥 비행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