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글쓰기라는 무리수를 던져보자.
주로 무리를 하는 편이다.
밤샘과 벼락치기를 해야 성과가 더 잘 나오는 것 같고, 즉흥 여행이 더 재미있는 것 같고,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우선해 보자고 선언하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바쁜데 투두리스트와 버킷리스트는 업데이트를 쉬지 않는다. 구내염 치료제 알보칠은 우리 집 인생약으로 상비한다.
보통 순간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나의 무리수들은.. ‘열정 과다 무리수 두기---->실태파악->부담과 자책->꾸역꾸역 실행->성취 또는 폭망’의 인생주기를 가지고 오랜 세월 순환, 반복되어 왔다.
도무지 무리하지 않고는 뭔가 할 수 없는 나를 부인하고 싶지만 인생의 주요 성취들이 대부분 무리수로부터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나의 게으른 천성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리수 한수 한수여서 그들이 나를 앞이든 옆이든 어디론가 움직이고 만들어왔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무리수라는 마법의 주문으로 내 인생에 주어진 과업들을 어쩌면 착실하게 수행해 왔다. 그럭저럭 말잘 듣는 학생, 착한 딸, 밥 값은 하는 직원, 한 가족의 구성원,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고 세금도 잘 내는 국민1...
어느덧 40세가 되었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무리도 안 하고, 통찰력이라던지 경륜 같은 것도 많이 생기겠지..라는 과거 내 기대와 달리 아직도 종종 길을 헤매고, 그 과정에 새롭게 던져진 무리수가 삶의 균형을 위협한다. 특히 에너지를 쏟아왔던 일에 대해 언젠가부터 내 안에 기쁨과 진심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불안과 위기의 순간이다. 대외적으로는 내 무리수는 통했고, 성취가 있었고, 모두들 잘하고 있다는데 정작 나는 그렇게 여겨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 공감하면 읽었던 박혜윤 작가님의 ‘오히려 최첨단 가족’에서 고민 해결을 위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었다. ‘삶이란 죽을 때까지 불확실하고, 그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의미를 써가는 과정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평가하는 성공과 평가의 기준을 떠나 내 인생을 음미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인생의 정수를 맛보는 그 느낌, 그것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어떤 역할을 잘 감당해 내는 것에 내 인생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느낄 때의 그것이 아닌, 좀 더 어리고 철없던 시절 던지고 이뤄냈던 무리수들로부터 느꼈던 쾌감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다시 나 자신의 행복과 고유함을 찾아가는 호흡이 긴 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내 삶의 동기와 에너지가 되어온 내 소중한 무리수(無理手). 다행히 아직은 나에게 무리수를 ‘툭’ 던지고, ‘꾸역꾸역’ 이행할 지구력이 남아있다. 무리수(無理數)와 같이 규칙 없이 변화하는 인생에서 오롯이 내가 되는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하고 이행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의 의미를 써 내려가고 싶다.
(2022년 6월, 오늘은책방에서 어딘작가님 뵙기전에 적었던 글 / '활활발발' 북토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