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생균근(Ectomycorrhizae)을 아시나요?
송이버섯과의 첫 만남은 20대 중반, 어느 가을날 경북 봉화에 출장길에서였다.
수소문 끝에 찾은 작은 가게는 전통시장 뒷골목의 건강원이었다. 그곳에서는 호박즙, 홍삼, 잉어즙 등 다양한 건강식품을 다려 팔았고, 제철을 맞아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송이와 능이버섯도 판매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상자에 가지런히 누운 송이버섯들은 마치 잘 깎아 놓은 몽당연필처럼 각기 다른 길이로 정렬돼 있었다. 송이버섯의 실물을 처음 본 서울 촌사람은 이 귀여우면서 조금 야한(?) 비주얼과 좋은 기운의 향기를 가진 비싼 버섯이 낯설지만 몹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송이는 단순히 고급 식재료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겨진 버섯으로 신라 성덕왕(702~737년 재위)에게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있고, 조선시대에는 송이를 예찬하는 시가 지어졌다. 근래에는 외교의 수단으로까지 쓰인 적이 있는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무려 2톤, 한화 시세로 15억 원어치의 북한산 송이버섯을 선물했으며, 이는 남한의 이산가족들에게 ‘북녘 산천의 향기를 담은’ 추석 선물로 나눠졌다. 아, 만화 <짱구는 못 말려>에서도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신 작은 송이버섯 한 개를 짱구가 엄마 몰래 먹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면서 이슬아 작가를 알게 된 후 나는 그녀를 심하게 흠모하게 되었는데 나의 애정은 이슬아 작가의 주변인들까지 확대되어 그녀의 글쓰기 선생님인 ‘어딘’과 오랜 친구인 ‘양다솔’ 작가까지도 연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중 양다솔 작가의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세 권을 모두 읽었는데 <아무튼, 친구>에 송이버섯에 대한 인상 깊은 이야기가 나온다.
양다솔 작가는 작가 자신의 삶이 때때로 깎아지른 절벽 끝 바위틈 사이, 척박한 곳에서 싹을 틔워 홀로 자라난 위태롭고 외로운 소나무와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미 태어나버렸지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미래를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인생이 고단했다고. 그런데 그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 같은 곳에서 고개를 쏙 내민 작은 송이버섯이, 소나무가 가진 포도당을 나눠 먹으며 자라 포자를 넓게 뿌리고 바위를 서서히 깨어 소나무의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버섯이 바위를 깰 수 있다고, 그 버섯 같은 친구들 때문에 소나무는 살 수 있다고.
송이(松茸)는 한자 그대로 소나무의 버섯이라는 뜻으로 소나무의 뿌리에 달라붙어서 그 둘은 ‘외생균근’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외생균근은 징그러운 곰팡이를 상상하게 하는 그 어감과 달리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계의 상호공생체이다. 식물 뿌리에 병을 일으키지 않는 균류, 즉 곰팡이가 침입한 후 뿌리는 균사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균사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각종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해서 뿌리에 전달한다. 또한, 균사는 작은 뿌리들이 자라도록 도와서 불리한 환경으로부터 식물 뿌리를 보호하고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그중에서도 ‘외생’ 균근은 식물의 뿌리 세포 안으로 깊숙이 침입하여 퍼지는 내생균근과 달리 식물의 표면에, 옆에 존재하며 식물과 함께 상리공생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송이버섯 구경하러 간 이야기에서 외생균근 정의까지 넘어가 버린 것은 좀 너무 간 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 송이는 그냥 귀하고 귀엽고 비싼 버섯이 아니라 소나무와 함께 공생하는 살아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인생의 주요 관계에서 당신은 주로 소나무인가, 아니면 송이인가? 나는 소나무 여왔다. 양다솔 작가가 말했던 절벽 끝 바위틈 사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난 작은 소나무. 삶이 고단한 맞벌이 부모의 외동으로 자라면서 혼자 있는 집을 못 견뎌하던 날들, 외로움과 공허함에 눌려 지내던 어릴 적의 날들이 기억난다. 아니 어쩌면 너무 서툴고 괴로웠어서 잊어버리려 노력한, 그래서 잊어버린 시절도 있다. 그때 내 곁에도 송이들이 자라줬었다. 절벽같이 머물 공간이 좁았던 내 삶에 들어와서 함께 해주고, 딱딱하고 모난 곳들을 깨 내주어 나의 뿌리도 숨을 쉬고 자라도록 해주었던 송이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소중한 이들에게 해야 할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시절, 건강한 관계라면 으레 필요했을 충분한 거리를 지키지 못하고 귀찮게 굴던 날들…. 서툴고 가벼웠던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함께 외생균근을 형성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소나무처럼 그들에게 내가 가진 지도 몰랐던 영양분을 나눠주었을까? 많은 송이들을 괴롭게 했던 나를 반성한다. 고맙게도 아직도 내 곁에서 함께 자라고 있고 내가 갚을 것이 많은 소중한 송이‘님’들이 곁에 있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서 같이 더 좋은 외생균근을 형성해 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안심이 된다. 그들 때문에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리 강한 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누군가의 수고와 영향으로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귀가 먹먹하도록 소리치지만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살게 하고 만들어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지지, 애정을 주고받으며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그것이 다시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힘과 능력을 준다는 것을 안다. 소나무와 송이처럼 외생균근을 이룬 우리들은 서로의 생존과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렇다면 송이버섯은 왜 그렇게 귀한가? 왜냐하면, 송이는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 등에서 여러 연구진이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아직은 상용화될 수준의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귀하고 향기로운 관계도 송이버섯처럼 오랜 시간 자연스레 자라나는 법이다. 맞다, 정말 그렇다..!
+ 덧
작년 가을, 밀리의 서재 앱에 <아무튼, 친구> 후기를 작성했다. 책이 출판된 직후라 내가 작성한 글이 첫 후기였다. 후기 말미에 나는 양다솔 작가님의 팬이며, 곧 제철을 맞을- 송이버섯을 넣은 채식 된장찌개를 같이 끓여 먹고 싶다고… 썼다. 하지만 글을 너무 못 써서인지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오늘 그 글을 삭제했다.)
음.. 글을 잘쓰고 싶다.. 꾸준한 글쓰기만이 해답이겠지…! 읽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도 성실하게 글 쓰는 여러분 모두 파이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