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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Jun 13. 2024

누굴 닮아 이렇게 이쁜 거야

아이고 우리 이쁜 딸내미 왔어!

우리 딸 왜 이렇게 이뻐?

누굴 닮아 이렇게 이쁜 거야?


분명히 오늘 아침 자는 널 보고 나왔는데

몇 시간 만에 다시 보는 너는 왜 이렇게 이쁜지


너의 볼을 쓰다듬고

너의 등을 쓰다듬고

너의 손을 마주잡는 나를 보며

너는 술래잡기하듯 도망치며 말한다


아빠, 아빠는 내가 그렇게 좋아?


그래!

라고 대답하기엔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작아 보여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꺄르르 웃고 있는 너를 보고 있으니

이렇게 이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함박웃음 너를 보며

나도 따라 웃음 짓다

크게 벌린 너의 입안으로

얼마 전 치료한 충치가 얼핏 보인다


충치 먹은 안쪽 어금니가 왜 이렇게 익숙할까

다시 입 밖으로 나오니

앳된 니 얼굴 대신

고운 우리 엄마 얼굴이 보인다


생전 처음 서울 한 복판에 아들을 두고

울며 기차를 타시던 모습이


방학 내내 술에 취해

매일 새벽 탕탕탕 현관문을 두드리면


아이고, 이기지도 못할 술을 뭐 이리 많이 마셨누


껑충한 아들의 축 늘어진 어깨 한쪽을

그 좁은 어깨에 둘러메고 질질 끌어서라도

기어이 침대에 눕히시던 모습이


한참 늦은 아침 부스스 일어나면

맨날 술 마시고 들어온다며

아빠가 뭐라 하시더라고 겁을 주지만

아빠가 진짜 뭐라고 했는지는 말을 못 하고

그저 얼굴에 무섭지도 않은 무서운 표정만 지으며

김치 콩나물 국을 데우시던 모습이


입대하고 첫 휴가를 나와

마룻바닥에 누워 잠을 자다 깼는데

하염없이 내 손을 어루만지시던 모습이


상견례 자리에서 아무런 자랑도 못하고

소심하게 웃으며


우리 아들, 참 착합니다


그 말조차 쑥스러워

고개를 돌리며 웃으시던 모습이


내가 너를 낳았을 때


엄마, 얘 우는 목소리가 완전 기집애야!


귀한 딸한테 기집애가 뭐냐며

한참을 타박하시던 모습이


그 모든 모습들이


나의 어머니

너의 할머니


너의 얼굴에

나의 엄마가

겹쳐 보인다


아빠는 오늘 참 슬픈 뉴스를 보았다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활짝 웃으며 들어올 것만 같은 아들,

사랑스런 아들,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다

볼 수 없음에 목이 메인다

너무너무 그립다


지난해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한 병사의 엄마가 쓴 편지를 보았고


군에 입대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청년에게

자신도 해보지 못한 가혹한 얼차려를 부여하고

그 가혹행위 끝에 쓰러진 청년에게


너 때문에 다른 애들이 못 가고 있다


다그쳤다는 어느 중대장에 대한 조사가

이제야 시작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세상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히 자식이다


아직 어린 열한 살 너의 눈에

아빤 정말 커다란 어른으로 보이겠지만

이제 예순이 훌쩍 넘은 우리 엄마 눈엔

아빤 아직도 차 조심을 해야 할 자식이다


남편을 잃은 부인을 미망인이라 하고

아내를 잃은 남편을 홀아비라 하고

부모를 잃은 자식을 고아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칭하는 말은 없다


부모를 잃은 자식에게

천붕이라 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 표현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식 잃은 부모의 속이 썩어가는 냄새는

십리를 넘어간다는 옛말로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 볼 뿐이다


부디 자식을 잃은 두 부모의 속이

그 썩어가는 속의 냄새가

십리를 넘어가지 말고

이제 조금씩 줄어들기를

자식을 둔 부모이자

한 부모의 자식으로서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바라고

삼가 유족의 평안을 바랍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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