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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Nov 20. 2022

137_ 노후준비를 하지 않는 건, 가난을 결정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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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를 준비하지 않는 건, 미래의 가난을 선택한 것이다.

       

노후 준비를 포기하는  스스로 미래를 지금보다 더 가난하게 살겠다고 결정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데 가난은 60세에 딱 맞춰서 지 않는다. 10년 후, 아니 당장 1년 후부터 일상에 슬슬 들어오기 시작한다.


노후 준비란 뭘까?

저금, 연금, 부동산, 주식 결국, 자산을 늘려 불로소득을 얻일이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며, 수입이 너무 적다며, 지금도 돈 쓸 데가 많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장 1년 뒤에도 늘어나는 자산은 없다. 그때부터 이미 가난해진 것이다.


가난을 검소하고 소박한 삶이라 여기며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가난을 잘 모르기 때문이거나 가난에 기준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가난은 검소한 게 아니라 위태로운 거기 때문이다.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병원 한 번 가기 힘든 삶이 괜찮기란 상당히 어렵다.


젊음이란 능력은 그 위태로운 마저도 가벼운 문제로 만든다.

그래서 지금 젊다면 돈이 적어도 살만하다며 낮은 소비 수준에도 그럭저럭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젊음 지나가고 나면 온몸으로 위태로움을 맞게 된다.


노후에 가난은 디멘터(영화 해리포터에서 악명 높은 죄인들을 가두는 아즈카반 감옥에 간수)와 함께 사는 거 같다. 그들이 곁에 있으면 심하게 우울해지고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데, 노후에 가난이 딱 그렇다. 슬프고, 비참하고, 인생이 칙칙하게 느껴지고…. 물론, 해리포터가 그랬듯이 어마어마한 긍정의 힘이 있다면 그런 우울감물리칠 수 있겠지만, 그게 참 어렵다는 걸 우리는 지금도 잘 안다.


텅 빈 통장은 어떻게 하면 돈을 지금보다 덜 쓸 수 있을까, 소득을 조금이라도 늘릴 방법은 뭐가 있을까만 고민하게 하고, 돈이 들지 않는 활동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러니 가난한 나이 든 사람에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늙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런 삶을 겪어보지 못했다.

하여 자꾸 소시민의 생활이 가난이라는 오해를 한다. 방 1~2개짜리 멀쩡한 주거지, 일주일에 2번 정도 외식, 골프 대신 집에서 치킨이나 시켜놓고 넷플릭스나 보는 생활. 그 정도까지가 가난인 줄 안다. 이건 그럭저럭 평범한 서민의 삶인데.


근데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이 소시민의 삶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SNS에 올리는 행복한 사진은 명품, 여행 중 찍은 사진, 맛있거나 비싼 음식 등 다 돈 쓰는 거뿐이다. 자꾸 30평대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보며 빠지고, 매일 돈 걱정 없이 커피 1잔 사 마시지 못하는 것에 씁쓸해한다. 


그런데 가난한 노인의 삶은 더 하다.

성실히 일했지만 평생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생계 걱정을 하며 일을 나가야 한다. 바로 옆에 널려있는 다양한 경험과 다채로운 음식들을 못 본 체하며 내 조그마한 집과 동네만 오가는 하루하루. 가슴에 불룩한 혹이 잡혀도 병원에 가기를 망설이는 위태로운 신세다. 


조금 가난한 삶이 영 못 살 건 아니지만, 그게 젊었을 때랑 나이 들어서 좀 차이가 있다. 젊었을 땐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도 생명에 지장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 일상생활, 소득이 크게 나빠지지 않지만, 노인은 다르다. 돈이 어느 정도도 없으면 그것들이 심히 열악해진다. 가난한 노인에게는 사람도 찾아오지를 않는다.


“노후? 그땐 또 지금처럼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면 돼~ 가난하면 가난 한대로~ 먹을 거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거지 뭐~ 그런 삶이 싫기는 하지. 우울하기도 할 테고. 근데 막상 살면 살아지겠지. 안 그래?”


지금도 괜찮지 않은 게 나이 든다고 괜찮게 느껴질 리 없다.

오히려 젊어서도 싫다 몸부림치는데 거기에 늙음까지 더해지니 더 비참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소비로 즐기는 행복과 가난에서 느끼는 불행은 나이 들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인들이 무슨 안 좋은 일에도 무덤덤해 보이는 것은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라 불행한 감정을 덜 표현할 줄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노후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50대엔 불안에 절어 살다가 60세부터는 가난하게 살겠다고 확실하게 정하는 일이고, 그건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을 미래에는 거의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곳에 닿기 싫어서 반대 방향으로 죽어라 노를 저으며 멀어지던 그 삶에 도착하는 꼴이다. 지금 불행이라고 부르며 멀어지려 했던 그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얻는 것이 가난이라는 건 상당히 불행한 일이다.


 나이 들어서는 들이닥치는 가난을 그냥 그대로 맞아야 한다.

“지금 고생했으니까 나이 들면 좀 쉬어야지~”가 아니라 계속 맞는 거다. 원펀치 투 펀치,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거의 백번은 말한 거 같은데 나이 들어서는 지금보다 일할 능력은 더 떨어지고 당장 돈 나올 구멍은 없기 때문이다.


노후 준비는 가벼이 여길 항목이 아니다.

현실을 즉시하고 정말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노후 대책이 없는 40~50대에게 늙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냐고 물으면 이따금 정부의 도움을 들먹이며 떵떵거리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하. 수급자)가 되면 문제 해결이라는 뜻이다. 그 말에 일리가 있긴 하다.


몇 년 전, 수급자 임대아파트에서 일하셨던 어머니가 만났던 동네 분들은 대부분 생활하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라에서 돈이 계속 나오니까. 일할 필요도 없고 골치 아픈 병원비까지 거의 지원받으니 먹고살 걱정 없이 통장에 들어오는 돈 맘 편히 다 쓰고 살기만 하면 되는 거다.


하지만 정부의 도움은 정말 먹고사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그 선까지다. 조금 가난한 삶인 건 매한가지다. 거기다 정부는 언제든 지원금을 줄일 수 있다. 그럴 확률이 낮다 해도 위태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니다.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좀 벌려고 하면 지원이 끊기니 꼼수를 부리거나 그런 삶을 포기해야 한다. 그 삶을 선택할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할 일이지만, 쉽게 수급자로 살겠다 결정지을 일은 아니다. 고민을 아주 깊이 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이 든 부모님의 삶을 함께 보내보니 60대에 가난은 까닥 잘못하면 빈곤해질 수 있는 경계선에서 매일을 사는 일이었다. 미리 노후를 대비하지 않은 탓에 얻은 결실은 다름 아닌 가난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노후 가난을 언급한 건 딱 그만큼 심각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부디 가난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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