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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Jun 27. 2024

고자질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주방이 제 모습을 갖추어 가도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3년간 할 오버타임을 세 달 동안 결과였다.

문제는 보조샘이었다.

그녀가 퇴근하고 나 밥알이 잔뜩 낀 철수세미와 구석에 처박혀 있는 행주를 볼 때마다 게이지가 올라갔다.

다음날 얘기를 하면 기분만 나빠 주방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다. 정리할 시간에 화장실 가기, 쉬운 일 길게 늘여서 하기는 그녀의 주특기였다.

맘에 안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보조샘과 그녀 말대로 "서로 맘 다칠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내겐 부담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원장에게 "일러바치기"였다.




"일러바치기" 즉 고자질의 리는 대체로 사소하다.

사소해 처음에 열거로 시작하면 결론 없이 말한 사람만 가벼워진다.  

그래서 고자질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보조샘이 20년을 일하셨다고요?"

무심한 듯 원장에게 물었다.

"네, 그렇다고 하시던데..."

"근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그다지..... 일을 아주 잘하시는 것 같지 않던데요....."

"그래요? 어떠시길래요?"(요말을 끌어내야 다)

"아니.... 밥 담은 밧드(체급식에서 쓰는 스텐용기) 물에 불려 그물수세미로 살살 닦으면 잘 닦이거든요. 근데 꼭 철수세미로 닦으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밥알 낀 수세미도 그냥 두시고.... 정리하는 거나 청소하는 것도 좀.... 다 아실 텐데 참..... 일일이 얘기하기도 그렇고.... 나이가 있으셔서 힘들어 그러나..... 아무튼 그래요."

의중이 복잡하지 않은 원장은 예상대로 내 의중도 단순하게 처리하며  감정 이입을 했다.

"그냥 얘기하셔요, 조리사님. 제대로 좀 해달라고."

이렇듯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을 던진 뒤 사소한 사례는 뒤에 얘기하는 다.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다.

"조리사님, 이걸 해주시기가 어려우실까요?"

"그게 꼭 필요하실까요?" 

말끝마다 과한 존댓말을 쓰면서 예의를 차리는 듯하지만 실은 내가 하는 일에 매번 딴지를 거는 주임샘을 일러바칠 땐 이랬다.

"..... 원장님, 이제 샘들과 신뢰가 생겨서 그런지 요즘엔 주방을 많이 배려해 주시더라고요.... 여전히 식판정리를 잘 안 하시는 샘도 있긴 하지만..... 식판 사이에 밥이 눌려 있으면 보조샘이 설거지할 때 힘들거든요....."

원장은 어김없이 덥석 물고 누구냐고 묻는다.

"..... 주임샘이 담임도 맡고 있어 바쁘신 건 아는데..... 조금만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고자질을 할 때는 

당사자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어야 하고,

만약 들통이 나서 나에게 따지러 오더

그의 면전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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