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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Dec 22. 2024

부실급식의 문제는 적량배식이 답일까?

어린이집 급식의 질을 떨어트리는 요인 3

메인조리사인 나는 보조조리사의 설거지를 도우며 그날의 잔반량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래야 다음 조리에 반영할 수 있고, 그래야 적정한 발주량을 예측할 수 있다.

새로운 어린이집에서의 처음 한 달은 아이들의 선호도를 몰라 양조절이 잘 안 되었다. 샘들은 주방을 부리나케 들락거리며 추가로 바트에 채워갔다

조금씩 양을 늘렸는데 이상하게 잔반량도 늘어갔다.  

영아가 많다고는 하나 이전 근무하던 곳과 비교하면 잔반이 3~4배에 달하였다.

점심시간에 반마다 들어가 보았다.

아이들의 먹는 양은 제각기 다르고 선호하는 음식도 다른데 아이들 식판은 동일했다.

배식량 전부를 한 번에 담아주고는 샘들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른바 "적량배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령별 배식량은 지침에 정해져 있다.

적량배식은 지침에 정해진대로 사진처럼 한 번에 충분히 주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적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수없이 아이들의 교실에 들어가서 관찰해 본 결과 한 번에 준 적량배식량을 남김없이 다 먹는 아이는 많지 않다.

그리고 한 반에 반이상되는 편식이 있거나 잘 안 먹는 아이들은 가득 담은 식판을 반기질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선호하는 음식위주로 적은 양을 일차로 준 다음 추가배식을 해나가면서 양을 늘려가는 게 좋다.

그래야 아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며 먹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먹던 안 먹던 급식비는 동일하니 모든 아이에게 동일하게 배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단 그렇게 주고 먹는 건 아이들의 자유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이 걸 보여주고 싶다

내가 근무하는 관내 국공립어린이집 영유아

급식비 지원은 오전 오후 간식까지 포함해서 1일에

영아 2250원

유아 3200원

교사 2500원이다.

(물론 원장의 재량으로 급식비를 조금은 늘릴 수 있다)

적량배식량과 식단과 급식비를 같이 비교해 보기 전에

교사 1인당 급식비가 2500원이라는 것부터 현실감 없게 다가올 것이다.


지침대로 적량배식을 하면서 저 금액에 맞추려면 방법은  가지다.

재료를 조금만 넣어서 많이 만들거나, 질 낮은 저가의 재료로 만들 된다. 그런데 이런 걸 다른 이름으로 "부실급식"이라고 한다.

적량배식이 마치 부실급식이 되지 않기 위한 지침으로 내려지지만 결국 원인과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2년차인 우리원 원장은 수많은 교육과 지침에서 배운 대로 "급식은 적량배식을" 공식처럼 외우고 있었다. 

원장뿐 아니라  대부분의 샘들도 그랬다.

이 아이가 반은 남길 거라는  알지만 한 번에 식판을 채워주는 게 손이 훨씬 덜 가기 때문에 잔반량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든 넉넉히 주고 남는 건 버리는 게 속 편한 것이다.


결과는 어마어마한 잔반량과 어차피 삼분의 일은 버려질 거 정성 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는 조리사의 체념이다.

급식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그래서 잔반관리는 중요하다.




잔반량이 적다는 것은 많은 걸 의미한다.

조리사가 만든 음식에 아이들의 입과 마음이 열였다는 거고,

아이들의 선호와 먹는 양을 조리사가 섬세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며,

원장과 보육교사 조리사의 마음이 모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은 예산으로도 질 좋은 급식을 만들 수 있는 시작이자 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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