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은 원아가 60명 정도라 (조리가 가능한) 보조조리사 아닌 주방도우미샘 정도면 충분히 꾸려갈 수 있다.
주방보조샘의 자질 중 내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은 행동이 바로 바뀔 수 있느냐다.
"... 이렇게 아니라 요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했는데 "아 맞다" 하며 계속 이렇게 하거나, 자기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은 좀 곤란하다.
나머지는 다 괜찮다.
그런 면에서 주방경력이오래되거나 화려한 사람은 주방보조샘으로 좋은 조건이라할 수 없다.(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주방의 합(harmony)이 실력의 합(total)은아니다.
최고의 스펙을 가진 보조샘을 뽑은 신임 원장이 그걸 알려면 한참은 걸리겠지만말이다.
내 옆에서 훈수를 일삼는 보조샘한테 샘이 힘을 좀 빼시면 제가 잘해드리겠다고 웃으며말해보기도 했지만 애초에 자기 설정을 과하게 하고 오신 샘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싱크대 상부장 좀 닦아달라고 부탁하면 자신은 의자에만 올라가도 어지럽다 하시고,
세척기에서 나온 냄비들은 싱크대위에 주욱 올려놓으셨다. 싱크대 아래 제자리에 넣어두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데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는 것이다.
싱크대벽면은 손이 안 닿아 못 닦고, 행주는 손힘이 없어서 못 짜시고...
보조샘의 역할은 보조이거나 보완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나를 거슬리게 하는 건 무엇보다나에게 하는 말투였다.
"어이... 저것 좀 줘봐이.... 아녀 고마 말고... 그려..."
"... 이건 어떻게 해달라는 거여..."
"뚜까리 어디간겨?"
처음엔 사투리를 써서 그렇게 들리나 했지만
가만 보니 나에게 존칭을 쓰기 싫은 듯했다.
원장과 어린 샘들에게는 "선생니임" "원장님께서"하며 꼬박꼬박 존칭을 쓰시고,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건네며 웃으시기도 했다.
"엄마! 아부지!"
놀라실 때마다 엄마 아부지를 외치고는
"엄마만 부르면 아부지가 서운하싱께"하시면서...
보조샘이 일을 하고 간 자리에는 그 샘의 마음이 그래로 묻어있었다.
... 널 도와주기가 싫어...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 원장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아직은 젊으신가 보네요 원장님. 앞자리가 3이에요 4에요?"
원장은 3이라 대답했다. 그리 궁금해 물은 것도 아니었다.
그날 점심을 먹고 설거지와정리를 하는데 보조샘이 원장에 대한 얘기를 내게 전했다.
"원장시험에서 2등을 해서 여길받아다는구먼..... 이른 나이에 아주 잘 풀린 거지"
"그러네요... 마흔도 안됐으니..."
원장나이가 39이든 40이든 주방에서 일하는 조리사들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 보통은 내 말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보조샘은 고개를 갸웃둥하며
"무슨 말하다가 그 얘기가 나온 거여?"하고 물었다.
나는 " 으응 오늘 아침에요..." 하며 원장과의 짧은 대화를 얘기해 주었는데 보조샘은 한숨을 한번 쉬시고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 40으로 알고 있는데.....에이고, 몰러..... 나 사실 나랑 원장이랑 10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야...ㅇㅇ어린이집에서 2013년도부터 나 원장 여기 운영위원장 셋이 같이 근무했어... 원장 결혼식도 가고 신랑도 다 봤지... 여기 운영위원장은 ㅇㅇ어린이집 현재 원감이고..."
자신과 원장이 어떤 관계고 자신이 이 바닥을 얼마나 훤히 알고 있는지,굴러온 돌인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이상 눌러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ㅇㅇ어린이집 원장이 얼마 전에도 아들결혼식이라며 연락이 왔더라고..."
10년 전 얘기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인맥임을 알려주고 싶은 듯 보조샘은덧붙였다.
나는 태연한 척 들으면서 내가 이 비밀을 알게 됐다는 걸원장에게 어떻게 알릴지 잠시생각했다.
"원장님 두 분이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라믄서요... 어쩐지... 어떻게 저만 모르게....."
이런 식의 가벼움을 나는 너무 싫어해서 약간의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래요?... 그동안 내가 원장님한테 샘 흉 많이 봤는데... 그때마다 원장님이난처했겠는데요."
보조샘은 이제야 자신을 알렸다는 뿌듯함과후련함에 내 말이 무엇을 유도하는지눈치채지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