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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Jan 01. 2025

목소리 낮추세요 여긴 어린이집이에요

참을 수 없었던 비밀 2

내 계산대로 보조샘은 며칠 후 원장에게 자신이 비밀을 말해버렸다고 털어놓았다.


"... 그동안 욱 연락한 사이는 아니고요... 제가 개원을 하고 얼마 있다가 전화가 오셨어요 개원 축하한다고... 그러다가 작년에 조리사님 채용을 확정 짓고도 보조샘을 못 구해서 전화를....."

원장은 굳이 내게 설명을 했다.

나는 기분 나쁘긴커녕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해는 안 돼도 이제 납득은 되었기 때문이다.


원장입장에서는 실력은 있어 보이지만 새로운 사람인 내 옆에다 이미 겪어본 사람을 두고 싶었을 것이다.

보조샘도 평교사시절부터 보아온 사람이 어느덧 원장이라는 위치에 올라 자신을 불러줬으니

잘해서 도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듣자 하니 4년 차 메인조리사라는데, 

20년 경력의 자신이 차근차근 노하우를 가르쳐줘야겠다고 큰 그림을 그렸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보조샘은 심리적 메인 조리사였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들이 생각한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는데에 있었다.


내가 보조샘이었다면 비밀을 간직하고 원장과의 유대감을 몰래 즐겼을 테지만, 

그녀는 나의 의외성에 그만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아이고 형님" 하며 엎어지기는커녕 힘을 빼고 자기를 따라오라 하니... 실은 니가 모르는 거대한 스토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입을 간지럽게 했던 것이다.


친분이 있었다는 게 뭐가 문제이겠느냐마는 

결과적으로 원장이 조리사에게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셈이었다.

이즈음 되면 현실을 반영해 그림을 다시 그리셨어야 했는, 여러모로 입지가 좁아진 보조샘은 얼마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며 나에게 호재를 주었다.




나는 주방에서 게이지가 오르면 말없이 업무를 배제시는 버릇이 있다. 다 내가 해버리는 것이다.

그날 나는 살짝 화가 나있다.

외부검점이 있는데도 전날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가셨기 때문이다.

다음날, 출근을 하면 보존식 세척부터 해야 했지만 보조샘은 커피를 마시며 내 말에 댓구를 하지 않았고, (나중에 자신은 할 거라 분명 말했다고 우기셨다)

나는 말없이 보존식을 꺼내 씻었다. 그런데 내 태도가 기분이 나쁘다면서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셨다.

"선생님, 목소리 낮추세요."

그러자 보조샘은 더 열을 올렸다.

"아침부터 먼저 기분 나쁘게 했자녀!"

"기분 나쁘셔도 목소리는 낮추세요. 여긴 어린이집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말하는 내가 더 얄미워겠지만, 그에 관한 적잖은 수업료를 치르며 몸소 배운 내가 아닌가!

"뭐 니가 뭔데 나를 가르쳐, 니가 뭔데!"


그 순간 전날 본 유튜브 썸네일이 떠 올랐다

<복수하지 말라.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 쇼펜하우어>

 

한바탕 떠들고 난 보조샘은 입을 다물고 일만 했고 소처럼 점심은 맛있게 드셨다.

"아침에 소란 있었던 거 원장님한테 보고할 게예요 선생님."

나는 퇴근을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실 보조샘의 교체에 대해서는 원장이 두 번이나 먼저 거론했었다.

그때마다 젊은 메인조리사가 나이 든 보조조리사를 내보냈다는 상황만으로 얘깃거리가 된다고,

더구나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어린이집에서 그런 소문은 원의 평판에 그다지 좋지 않다고 내가 만류했었다.

그건 원장에게 하는 그럴듯한 얘기고, 실은 해고의 사유까진 되지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 해고의 사유가 되고,

이런 주방 분위기에서 같이 일하는  물리적 위험이기도 했다.



나와 보조샘의 이야기로 사실확인을 한 원장은

예상외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보조샘한테 사과의 기회를 주었다.

그 이유가 정말 측근이라서인지 아니면 일을 확대시키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육교사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둔다며 내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원장한테 내가 한발 물어나 주기로 했다.



본인의 입으로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것만으로도 보조샘의 그림은 그날 갈기갈기 찢어졌고,

나에게 존칭을 쓸 것을 약속한 후로 한동안 말수를 줄이시고 열심히 일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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