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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Nov 26. 2023

냉장고문을 열어 놓고 간 도둑

또 하나의 사건 1

사실 어린이집에서 조리사는 원감과 힘겨루기를 하거나 두뇌싸움을 버릴 만큼의 위치가 아니다. 뒷문으로 출근해서 아이들 밥을 해주고는 뒷문으로 퇴근한다 할 정도로 그림자 같은 존재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원감이 그런 조리사에게 번번이 수모를 당하고도 나를 자를 수 없는 게 그녀의 딜레마일 것이다.

내가 있으므로써 누리는 혜택(맛있는 밥과 줄어든 업무량)과 내가 있으므로써 위협받는 자신의 위상을 매번 저울질할 이다. 아직은 혜택이 크다고 계산하는 모양이다.




긴 추석연휴에 연차까지 붙여 유럽을 갔다 와도 될 정도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추석연휴 6일이 끝난 다음날 원장에게 카톡이 왔다.

"조리실 냉장고 문이 6일 동안 열려있었네요.

냉동실에 있는 모두 식자재는 폐기처분해 주시고 조리실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냉장고 문 잘 닫도록 말씀해 주세요. "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이어 원장은 사진을   보내왔다.

하단이 서랍형으로 되어있는 냉동실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연휴전날 퇴근하면서 확인할 때와는 달랐다. 분명 지 않은 동그랑땡 두 봉지와 만두 한 봉지가 있었는데 동그랑땡 한 봉지만 남아 있었다. 혹시나 싶어 퇴근하기 전에 찍어둔 사진을 찾아보았다.

냉동실문을 열어놓고 간 범인이 갖고 간 것이다.

아니 갖고 간 범인이 냉동실문을 열어놓고 간 것이다.

큼지막한 냉동식품 두 봉지를 양손에 들고 미처 냉동실 서랍문을 닫지 못한 채 급히 돌아섰을 범인을 생각하니 어이없는 코웃음이 나왔다.

누구일까?

주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총 네 명이다.

조리사인 나와 주방 보우미샘 두 분 그리고 원감이다. 원장은 가끔 컵을 가지러 들어올 뿐이다.

오전 도우미샘은 3시에, 나는 아이들의 저녁을 한 후 5시 반에 퇴근한다. 오후 도우미샘이 저녁 설거지를 고는 7시에 마치고, 원감은 야간연장담당이라 10시에 퇴근한다.

그럼 범인은 저녁까지 있는 오후 도우미샘과 원감 둘로 좁혀진다.

그런데 오후 도우미샘이 냉동식품 두 봉지를 주방에서 들고 나오려면 원감의 눈에 밖에 없다.

합의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 




모든 주방은 음식 및 식자재의 반출이 금지된다. 또한 모든 급식은 당일 만든 음식만(김치를 제외) 제공하게 되어 있으며 남은 음식은 모두 폐기해야 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식자재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이다. 

남은 음식을 폐기하지 않으면 조리하는 사람은 모자라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넉넉히 만들게 된다. 나중엔 일부러 남기는 일까지 생긴다.

특히 급식은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이런 손실은 다시 급식의 질을 떨어트린다.

솔직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릴 땐 나도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남지 않을 만큼의 적당량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남는 음식을 최소화하려면 버리는 음식이 그만큼 아까워야 한다.


그런데,

보다 내가 한 음식을 더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퇴근하고 나면 남은 음식을 가고, 언젠가부턴 식재료에 대한 애정까지 생겨 가져가기 시작했다.

남은 빵이나 과일 등은 다음날이면 사라졌다. 내가 연차로 쉬고 오면 동그랑땡, 만두, 떡갈비, 함박스테이크 등이 있던 냉동실도 비워졌다.


"아 참, 여기 뜯지도 않은 식빵 있었는데... 못 보셨어요, 원감샘?"

나는 원장이 들을 수 있게 무심한 척 그녀에게 묻곤 했다.

"아 식빵요?..... 제가 폐기했어요."

"폐기요?"

.... 폐기라니 유통기한이 남아 는데... 그리고 식자재폐기는 보통은 실무자가 한다. 관리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폐기를 지시할 뿐이다.... 더욱이 폐기는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폐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범인은 원감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사실 원장님은... 원칙적인 말씀밖에 할 수 없는 치거든요."

이 말 한마디로 원감은 훨씬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원장이 하는 말은 진심이 아니다, 원장의 의중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교묘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권력자의 측근이 늘 비리의 온상이 되는 것도

그 '의중' 때문이다.


그 의중에 도적질도 허용되는진 알 수 없으나 원감의 도적질은 점점 도가 지나쳐갔다.

샘들의 간식 만들 때 쓰려고 내가 직접 만든 바질페스토도 없어졌다.

도적질에 매너 또한 없다. 자기가 싫어하는 떡은 교사용 냉장고 처박어 두고는 한 달이 되도록 폐기하지 않고, 남은 음식을 싸간 용기는 제때 갔다 두지도 않았다.



"... 작은 문제가 아닌 듯하네요 출근하면 경위를 알아볼게요."

원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주 적절한 기회가 왔다. 적절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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