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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Dec 02. 2023

원장의 의중

또 하나의 사건 2

원장은 자신이 목격한 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무게를 두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얘기했다.


"주방에서 띠띠띠 소리가 나서 들어와 보니까 냉동실 서랍문이 열여 있는 거예요. 연휴 6일 동안 열여 있었던 거잖아요.... 안에 있는 식재료는 상했을 거고.... 근데 열여 있는 문을 누군가 무심코 닫았다.... 그리고 조리사님이 그걸 모르고 그냥 사용했다 이러면 어쩔뻔했냐고요... 급식사고예요... 생각만 해도...."

 

' 범인은 바로 원감이라구여!!'

나는 그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중에 도우미샘 말에 의하면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얼굴이 하얘 정도로 순간 참은 이유는 결론을 말하기 전에 원장의 그'의중'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주방사람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이번엔 원감의 오랜 도적질을 알려야 했다.

나는 원장에게 따로 가서 사라진 식재료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원장님, 제가 연휴전날 마감하면서 냉동실을 확인하고 갔거든요. 그때 뜯지 않은 동그랑땡 두 봉지와 만두 한 봉지가 있었는데 한 봉지씩이 없어졌더라고요... 누군가 그걸 갖고 가면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것 같아요."

"....."

"일단 저와 오전 도우미샘은 먼저 퇴근했고.... 그럼 저녁 도우미샘과 원감님이신데...."

그러자 냉장고 문단속을 운운하던 원장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와요.... 나는 딱 보고 알았어요."


마치 이 상황에 대해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해 와서는

이젠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버전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 조리사님, 원칙적으로 주방에서 음식반출 안 돼요.... 그런데 좋아요 버리기 너무 아까워서 조금씩 가져갔다 합시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아니지... 식재료를 갖고 가려다가 연휴전날 냉장고문을 열어놓고 갔다? 그것도 원감이라는 사람이?.... 이건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원장은 얘기를 하면서 조금씩 흥분했지만 포커스를 그날 그 사건에 맞추고 있었다.


그동안은 사소했으니 이해했다 그런데 (더 큰) 이건 아니지원장의 생각은 접속사가 틀렸다.

3년 동안 그래왔기 때문에 결국, 비로소, 마침내 이리된 것이다. 그 조금씩의 허용이 쌓여 이리도 대범해지고 위험해진 것이다.


"지난번에 원장님이랑 셋이 얘기했었잖아요... 주방에 있는 냉장고는 손대지 않은 게 원칙이다.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샘들이 야근하면서 먹을 게 없다고 원감샘이 그러셔서 교사용 냉장고에 조금씩 빼두기로 그렇게 얘기 됐었잖아요."

"네 그랬죠."

"근데 그 이후 교사실 냉장고 간식거리를 옮겨두면 그날로 싹싹 없어졌어요. 샘들이 먹은 것 같진 않은데.... 교사실에 빼둔 건 마음 놓고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나는 원감이 상습적으로 그래왔음을 얘기했다.


"원장님, 제가 엄청 알뜰하게 식재료 관리를 해요. 그래서 매달 발주금액까지 일정하게 맞춰준단 말이에요."

"알고 있어요, 조리사님."

"그거 쉽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예산을 춰서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럼요..."

"원감샘은 그달 예산이 이미 정산된 거고 담달이면 새로운 예산이 나오니까 남는 거는 소진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본데..... 원감샘 챙겨가라고 제가 아끼는 게 아니잖아요.... 남는 식재료는 다음 달에 쓸 수 있는 거고..."

원장은 내가 원감의 생각을 짚어내자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원감샘의 행동을 멈추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전의 했던 것들의 책임도 물어주세요. 시말서 정도로는 안됩니다, 원장님."

"그럼요, 이건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에요."

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번에도 감봉을 당하면 타격이 꽤 크겠다 싶으면서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기도 했다.


원감은 툭하면 시말서 써와서는 먼저 원장 앞에 내밀며 고개를 조아렸다. 일단 원장의 노여움을 푸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3년 동안 식재료를 챙겨 가면서 걸리면 시말서 한 장 이면 된다고 계산한 게 분명하다.


"당연히 시말서 가지곤 안 되죠."

"이번일은 주방 도우미샘들도 알고 있어서 입장도 난처해요."

"아휴... 어디 가서 창피해서 얘기도 못해요..... 이따가 원감이랑 셋이 얘기합니다. 나도 얘기할 때니 조리사님도 주방책임자로서 확실하게 한마디 해 주세요."

"네."

주방책임자라....

주방에서 원칙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데 그걸 제어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책임자인가요? 묻고 싶었다.




원장이 말한 "이따가"는 빨리 오지 않았다.

샘이 한 분  그만두었는데 교사를 구하지 못해 원장이 그 반을 맡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답답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율동까지 하며 실무를 뛰고 있는 원장을 보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세명의 담임교사가 그만두었다. 

보육교사는 이직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단지 이직률뿐이 아니라 어린이집은 이직에 대한 다른 정서가 있다.

일반적으로 입사를 하면 계속 근무할 것을 서로가 추정하고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생겨야 퇴사를 결심하는데 이곳은 그와 반대이다. 

서로가 계속 일해야 될 이유를 찾아야지만 고용이 유지되는 듯싶다.


그 이유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원 샘들은 대부분 1년씩만 하고 떠났다. 

올해는 그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는데, 

새로운 샘이 바로 구해지지 않아 그때마다 공백이 생겼다. 원장과 원감은 학부모들을 달래 가며 그 공백을 메우느라 작년보다 분주했다.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아침, 

컵을 가지러 주방에 들어온 원장이 나를 보며 

아주 가볍고도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조리사님, 금요일에 원감한테 내가 알아듣게  얘기했어요. 얘기해 뒀으니까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 알려 주세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한참을 있었다. 

지난번 나와 원감에 대해 얘기하고는 다음날 감봉조치를 내릴 때 보다 더 황당했다.


원감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원장의 의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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