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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Feb 04. 2024

늘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사람

보육교사의 이직

11월이 되면 보육교사와 원장은 업무평가, 업무성취도, 업무만족도 등 별별 이름의 문서로 서로 간을 보기 시작한다.

그 문서에는 다음학기 이직의사에 대한 질문도 들어있다. 그런 후 12월에 원장과 개별면담을 하면서 재계약 여부를 결론짓는다. 

서로 콜을 해야만 재계약이 성사되는데 우리 원은 그 확률이 좀 낮다.


그리고도 두 달을 더 근무하게 된다. 

1,2월은 명절과 재롱잔치 졸업식등 행사도 많고 학기말이라 업무량이 많은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원장이나 원감, 보육교사 모두 서로에게 나미가 떨어지는 듯했다. 


나가는 보육교사를 교묘히 괴롭히기도 하고,

나가는 샘들이 참았던 문제를 터뜨리거나, 

앙심을 품고 사소한 위법사안을 고발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보육교사의 처우와

일단 학기가 시작되면 일 년을 무탈하게 마쳐야 하는 원장의 절박한 입장이 버무려진 씁쓸현실이다




12월 말이 되도록 교사면담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원에서 4명의 구인이 올라왔다고

샘들이 내게 전했다. 

나는 일찌감치 이직을 마무리진 상태였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원장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던 샘들은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보조교사인 만두샘한테는 그런 간 보는 과정조차 없었다고, 만두샘을 옆에 두고 6세 반 샘이 열을 내며 내게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원감이..... 새로운 사람을 좋아해. 샘들도 1년이면 너~오래됐어."

"ㅋㅋㅋ"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원장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구인을 먼저 올려놓고 샘들의 태도를 보려는 건가? 아님 이번에 면담이고 뭐고 싹 물갈이를 하려나?



그 와중에도 우리 원에 9월에 들어와 내년에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줄곧 밝혀온 7세 반 샘은 재계약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통은 그럴 것이다.

그런데 원장은 재계약이 안되었음을 통보했고 그 샘은 그 사유를 물었다고 했다.

이제껏 돌하게 사유를 물어본 사람은 없었는 계약만료가 사유라고 했단다.

정당한 사유를 알려달라는 샘의 요구에

원장은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는 그 자리를 15분간이나 말없이 앉아 있다가

"선생님,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 먼저 일어나게요."

하며 자리를 떴다고 다.



다음날 도우미샘이 주방에 황급히 들어와서는 

지금 7세 반 샘이 원장한테 혼나고 있다고 전했다.

원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원장은 전날 그 자리에서 할 수 없었던 계약만료 사유를 일일이 친절하게 알려 줄 참인 듯싶었다.

시간차를 두긴 했지만 알려달라 하니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차분히 대화로 풀라는 평소 지론대로 원장은 소리를 높이거나 거친말을 한적이 없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한테 유리한 '대화'로 풀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대화와 대화 아니 방법이 있으니까.



그 주에 7세 반 샘은 그만두었다.

원장이 유종의 미를 강조하며 재롱잔치가 끝나는 2월까지 근무할 것을 요구했지만,  샘은 멘털이 무너져 더 이상 아이들과 있을 수 없다고 했단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7세 아이들 재롱잔치는 모든 걸  다 쏟아야 해요. 샘들한테는 자산과도 같죠. 그걸 왜 주고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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