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현 Feb 14. 2024

일본된장을 비행기 타고 가서 사 오셨어요?

아이들 급식 지도

학교급식 영양사의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 벌써 5번째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베타량 영양사이신 <건강멘탈>의 글을 읽으며,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쓰고 있다' 말이 이해될 만큼 학교급식의 현장은 답답하기만 했다.

영양사들은 마라탕과 탕후루에 길 들여진 아이들의 입맛과 건강한 영양밥상을 지시하는 교육부사이에서 날로 거칠어지는 학부모들의 민원까지 감당하고 있다 한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집 조리사의 환경은 좋은 편이다.

좀 늦게 먹거나 편식을 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맛에 불평을 하지 않고 샘들이 지도하는 대로 먹으려고 적어도 노력을 한다.

스스로 골고루 먹었다고 생각한 날에는 어김없이 내게 자랑을 하고 간다.

그런 우리 아이들의 사랑스러웠던 순간 떠올랐다.

앞으로도 내가 잘 교육시켜서 올려 보내야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된장국은 재료를 달리하여 자주 나오는 메뉴 중 하나다. 나는 마른 펜에 국물멸치를 살짝 구워내 비린내를 날린 다음 다시마와 자투리 채소를 넣고 육수를 내서 끓인다. 그날은 두부미소된장국이었다.

전에 오꼬노미야끼를 할 때 고명으로 올린 가쯔오브시를 육수에 조금 넣었다. 특유의 향이 살짝 났다.


평소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래가 국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에쿠싶었지만 나는 태연한 척했다.

"그래?"

옆에 앉은 오승이도 거들었다.

"저도여. 맛이 이상해요."

"윽, 냄새 때문에 못 먹겠어."

"저도요."

"저도요."

순식간에 아이들이 동조를 하며 분위기가 쏠렸다.

이러다가 큰일이다 싶었다.

누군가 "아 똥맛이야."라고 선언하는 순간 처음 쌀국수가 나왔던 날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도 안된 채 반으로 나오게 될지도 몰랐다.


"얘들아 된장국 맛이 좀 다르지? 이건 일본 된장국이야."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일본된장국이요?"

"응 우리나라 된장국도 있고 일본 된장국도 있어."

"....."

아이들은 '이상한' 된장국과 '다른' 된장국 사이에서 잠시 조용해졌다.

그때 은찬이가 내게 물었다.

"그럼 일본된장을 조리사님이 비행기 타고 가서 사 오셨어요?"

"아니 일본된장을 우리나라에서도 팔아, 우리 된장도 일본에서 팔고."

"아하"

(내게 천사 같은) 은찬이의 말에 아이들의 관심은 된장국에서 일본으로 옮겨갔다.

" 일본 가봤는데"...."나도 5살에 갔었어, "... "나도"

"난 비행기도 타봤어.".... "나는 더 큰 비행기 타고 갔어."

"휴우..."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샘은 못 가봤는데..... 얘들아 어서 밥 먹자."

아이들은 냄새를 잊고 그날 밥을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잔반도 거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늘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