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연차수당

by 시현

"원감선생님, 언제까지 이 짓 하실 건가요?

식자재 빼돌리고 남은 음식 싸가고.....

이런 게 감봉사유 아닌가요, 원장님!"


내 입안에 고여 있는 말이다.

이 말의 속 시원함은 얼마짜리일까?

나는 속 시원함 대신 실익을 택하였다.




그만둔다고 알리고 남은 근무일이 길수록 나가는 사람은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3개월 전에 퇴사의사를 밝힌 건 조리사 업무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이제껏 내 업무의 범위는 내가 정하였다.

간단하다. 원장과 원감의 기대치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일하면 된다.

급식관련한 업무를 내가 다 가져온 것도 조리사를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행사나 현장학습등 주방 외에서 일어나는 일만 제때 내게 전달해 주면 나는 여기서 아주 독립적인 존재다.

3일에 한 번씩 원감의 입에 맛있는 간식을 처넣어주기만 하면 업무 외의 미묘한 일로 내게 딴지를 걸지 못한다.


한 가지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연차처리였다.

연차는 만 1년이 되면 그 즉시 일 년 치 연차가 새로 발생한다. 내 생각엔 1년 미만도 연차가 생기도록 법개정이 되는 과정에서 생긴 구멍인 듯싶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라에서 구멍을 지나가라니 지나가야지.

나는 만 3년이 되는 11월에 16일의 연차가 생겼기 때문에 2월까지 다 소진하고 나가야 한다. 13일이 남아 있었다.

설연휴 이후 남은 일수를 계산하니 딱 13일이었다. 그러니 설연휴 전날인 8일까지만 근무하면 되었다.

한 달 전에 달력을 보여주며 그리했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며칠 후 원감이 내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연차기간에 근무를 하고 연차수당으로 받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이곳 일을 조금 더 하면서 연차수당을 챙기면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고,

원 입장에서도 대체조리사를 따로 구하지 않고 3월부터 조리사가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것처럼 보이니 손해 볼 게 없을 터였다.

이상하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간다.


내 이야기를 아는 지인은 전투적인 방법을(예를 들면 관련부서에 고발을 하거나 지역 맘카페에 올리라고)

추천하기도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혼내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런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깟 푼돈에 내 영혼을 판 것은 아니다.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누군가.... 오지랖이 넓고, 남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잘 되며, 자기가 알고 있는 걸 퍼 나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이 글에 나오는 어린이집이라는 걸 알게 되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학부모들과 원장, 원감 모두가 내 글을 읽게 되는 날!

내 글을 읽고 있는 원장과 원감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으로 그 시원함을 대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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