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현 Feb 26. 2024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연차수당

"원감선생님, 언제까지 이 짓 하실 건가요?

식자재 돌리고 남은 음식 싸가고.....

이런 게 감봉사유 아닌가요, 원장님!"


 입안에 고여 있는 말이다.

이 말의 속 시원함은 얼마짜리일까?

나는 속 시원함 대신 실익을 택하였다.




그만둔다고 알리고 남은 근무일이 길수록 나가는 사람은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3개월 전에 퇴사의사를 밝힌 건 조리사 업무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이제껏 내 업무의 범위는 내가 정하였다.

간단하다. 원장과 원감의 기대치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일하면 된다.

급식관련한 업무를 내가 다 가져온 것도 조리사를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행사나 현장학습등 주방 외에서 일어나는 일만 제때 내게 전달해 주면 나는 여기서 아주 독립적인 존재다.

3일에 한 번씩 원감의 입에 맛있는 간식을 처넣어주기만 하면 업무 외의 미묘한 일로 내게 딴지를 걸지 못한다.


한 가지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연차처리였다.

연차는 만 1년이 되면 그 즉시 일 년 치 연차가 새로 발생한다. 내 생각엔 1년 미만도 연차가 생기도록 법개정이 되는 과정에서 생긴 구멍인 듯싶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라에서 구멍을 지나가라니 지나가야지.

나는 만 3년이 되는 11월에 16일의 연차가 생겼기 때문에 2월까지 다 소진하고 나가야 한다. 13일이 남아 있었다.

설연휴 이후 남은 일수를 계산하니 딱 13일이었다. 그러니 설연휴 전날인 8일까지만 근무하면 되었다.

한 달 전에 달력을 보여주며 그리했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며칠 후 원감이 내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연차기간에 근무를 하고 연차수당으로 받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이곳 일을 조금 더 하면서 연차수당을 챙기면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고,

 입장에서도 대체조리사를 따로 구하지 않고 3월부터 조리사가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것처럼 보이니 손해 볼 게 없을 터였다.

이상하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간다.


이야기를 아는 지인 전투적인 방법을(예를 들면 관련부서에 고발을 하거나 지역 맘카페에 올리라고)

추천하기도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혼내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런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깟 푼돈에 내 영혼을 판 것은 아니다.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누군가.... 오지랖이 넓고, 남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잘 되며, 자기가 알고 있는 걸 퍼 나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이 글에 나오는 어린이집이라는 걸 게 되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

학부모들과 원장, 원감 모두가 내 글을  읽게 되는 날!

내 글을 읽고 있는 원장과 원감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으로 그  시원함을 대신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된장을 비행기 타고 가서 사 오셨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