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는 것의 의미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한다는 것은 꽤 씁쓸하지만 용기 있는 일이다.
그간 10년 넘게 한 분야에 꿈을 꾸며 달려왔다. 좋아했고, 잘하고 싶었고, 더 멋진 꿈을 꾸었다.
꿈을 꾸며 달려가는 과정은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고, 괴로웠던 때가 더 많았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볼 때만 즐거웠고, 과정은 전혀 즐기지 못했다.
꿈이 너무 컸던 탓일까?
나의 적성과 맞지 않았던 걸까?
이게 정말 좋아하는 게 맞을까?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이 분야에 재능이 있나?
즐기지 못하는 과정을 겪는 동안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이 분야에 재능이 있나? 잘하나?라는 질문의 답을 알게 된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벽이었다.
작업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벽을 마주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작업을 그동안 해오지 않았었고, 그쪽으로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벽을 마주한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벽을 넘는데 내가 가진 고유의 기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익혀야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아지는 달리기는 잘하지만 손과 발에 미끄러지지 않는 개구리의 빨판은 없어 벽을 타고 올라가지는 못하는 그런 느낌…
그동안에도 벽을 뛰어넘기 위해 벽을 향해 달리다가 계속 부딪혀서 지쳐있었는데,
더 높은 벽을 만나게 되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고 하던데,
좋아한다고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예전에 심리 검사를 받고 상담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 중에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뛰어가서 저 멀리 앞에 간다면, 나는 타이어를 하나 끌고 가는 느낌일 거라고.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고유의 기능은 살리지 못한 채 다른 기능을 잘하기 위해 애써왔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재능, 타고난 나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간 10년 동안 꿈꿔왔던 분야를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하면서도 이게 맞을까, 하며 괴로웠던 나의 꿈.
그만할까, 싶으면서 미련이 남아 조금 더, 조금만 더 해보자, 하며 놓아주지 않았던 꿈.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숨 쉬듯 해왔던, 하면서도 하고 있는 줄 몰랐던, 그런 일들을 해야겠다.
강아지는 달리고, 개구리는 붙어있고, 소금쟁이는 떠다니고, 새는 날고, 나무는 숨 쉬고.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