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나무궁전 Oct 03. 2023

내가 잘하는 건 도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면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일을 해왔고 이런 걸 잘한다라고 자신의 특기를 내세워 소개하는 자리였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정리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동안 해오던 일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내려간 때였다.


뭐라도 소개를 해야 하니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없었다.

내가 잘하는 건 비관적인 생각하기인데???

모든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끝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누가 옆에서 긍정적으로 말해줘도 나는 그것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비관적인 힘이 있었다.



어차피 세상은 곧 망할 거야.

모두가 세상이 망하는데 동조하고 있어.

아무도 이 상황을 막을 수 없어.

모두 고통스럽지 않게 한 날 한 시에 싹 망하자! >.< 우케케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래도 이걸 자기소개랍시고 소개할 수는 없었다.

정말 정말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떠올려보자.



무엇일까 곰곰이 간절히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하나가 떠올랐다.

”정리하기“

뭔가를 착착 분류하고 정리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숨 쉬듯 해오던 일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면 편안-한 마음이 들고 정리하는 게 취미활동같이 재미있었다.


잘하는 일이란 건 엄청난 내공이 쌓여서 만들어진 기술이나 능력을 말하는 것 외에,

남들은 못하는데 나는 애쓰지 않고도 숨 쉬듯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갈고닦아 만든 기술이나 능력만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이상향에 비해 한없이 낮았기 때문에 잘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고, 그래서 잘하는 것이 없어 괴로웠다.

하지만 잘하는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알게 되고, 다시 한번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나도 분명 잘하는 것이 있었다.


또 다른 재능은 무엇이 있을까?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사소했던 나의 재능을 재발견했던 날이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오프라인 행사 준비를 하던 날이었다. 양이 많아 직원들이 모두 모여 제품 검수와 포장을 했다.

제품에 띠지로 포장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만든 건 모두 삐뚤빼뚤 예쁘지가 않았다.

포장이 딱 각 잡혀서 빧빧-하게 일정한 방식으로 한데 모여있어야 정갈하게 전체 모양이 나오는데

흐물흐물하게 힘이 없어 쳐지고 각자 다른 방향 다른 방식으로 포장된 것들이 모여있으면 지저분해 보이고 어딘가 어설퍼보인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음에도 남들은 잘 못하고 나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척척 손이 먼저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해왔어서 내가 손재주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아주 간단한 작업을 하면서도 남들과 차이가 나는 것을 직접 보니 더욱 실감했다.

(어떤 분은 하다가 잘 안돼서 화를 내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만든 건 예쁘지도 않고 오래 걸려서 결국 나중엔 이 일이 나의 담당이 되어버렸다.ㅋㅋ)

재능이란 이처럼 사소하지만 숨 쉬듯 쉽게 하는, 남들은 잘 못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재능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나는 나의 이 재능을 제대로 못써먹고 살았구나 싶었다.


알고 있었는데…?

나도 내가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고, 하고 싶었고, 자신 있었는데.

어렸을 적을 떠올리면 나는 항상 손으로 꼬물꼬물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수업시간에 책상 밑 서랍에 손을 넣고 학과 거북이 1000개를 접었고,

온갖 꽃을 접어 반 친구들에게 종이꽃 판매도 하고, 종이배 접기 대회에도 나가고,

손글씨로 월간 미니잡지 10개월 제작, 만화 그리기, 라디오 방송 녹음, 과학상자 만들기, 납땜으로 라디오 키트 완성…


왜 그동안 이 재능을 써먹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갔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분명 알고 있었고, 이 재능을 이용해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하면서 점점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이것저것 필요한 일들을 하면서 점점 중심에서 멀어져 온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재능을 인지하게 되자 나에게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 이거 내가 잘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평소 자신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을뿐더러

그동안 내가 해왔던 분야의 일에서는 누가 잘한다고 칭찬해 줘도 빈말로 들으며 한없이 나를 깎아내리기만 했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해본 적도 없는 일에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라니??

갑자기 나타난 근자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신기했다.

나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유전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재능,

자라면서 경험으로 쌓인 재능,

갈고닦아 만들어낸 재능,

모두 다 한 가지씩은 다 가지고 있다.

아주아주 사소해서 발견하지 못했거나 먼 길을 돌아가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재능이 뭔지 모르겠다면,

1. 어렸을 적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놀았던 것이 무엇인지 나열해 본다.

2. 그 놀이들에서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3. 다양한 일을 해보면서 남들보다 손쉽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4. 2번과 3번을 관통하는 것을 재능으로 발견한다.

5. 그래도 모르겠다면, 그래도 어딘가 나의 재능이 있다고 믿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