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다국적 기업을 선택했는가

외국계 기업 근무 7년차 직장인의 이야기 - 1

by 내일

2014년,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둔 나는 기업에서 흔히 말하는 스펙은 훌륭하지만 특색이 없는 취업준비생이었다. 명문대 졸업장, 합격 커트라인보다는 높다는 토익 점수, 제2외국어, 인턴쉽, 기타 대외활동내역, 남들이 준비한 스펙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서류만 보면 비슷한 수준이다 못해 재미없는 지원자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그러하듯 다양한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지기도 하였고 운이 좋아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그야말로, 아주 격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환멸을 느꼈다. 나를 선택하지 않은, 혹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기업을 폄하하거나 비난 혹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해당 기업들의 채용에는 내규에 의거한 기준이 있었을 것이며, 그 기준에 맞추어 선발하기에는 나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만 (사회초년생의 발상으로는 건방졌던) 내 기준으로는 기업들의 인재 선발과정에 의문을 가졌고 불편함을 느꼈다.


대학에서 디자인 기획을 전공한 나는 제품 기획 및 마케팅 업무에 큰 매력을 느꼈고, 비슷한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현재는 포지션에 따른 상시채용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많이 늘었지만, 당시에는 한국 기업들의 신졸 채용의 방식은 일괄적으로 신입사원 기십명을 채용한 후 연수를 거치는 후에 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원서를 내고 지원했던 대부분의 기업들도 그러하였고, 부서별로 나누어 원서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괄지원이 대다수였다. 그야말로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보니, 특정 업무를 희망하는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면접이었다.


사진출처 1BOON


6명의 지원자가 같은 방에 들어가서 20분간 면접을 진행한다.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많아봐야 1개, 업무능력과는 관계가 없는 평의 한 질문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려 하는 초년생들에게 업무능력과 관련해서 무슨 질문을 할 수 있겠냐만은, 서류에 적혀있는 정보 몇 줄과 한 두 개의 질문을 통해 내 점수가 결정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취업처로써 아주 매력적인 기업에서의 임원면접이 아직도 기억난다. 존경하는 인물을 묻기에 답변을 하였고, 실소와 함께 "존경하는 사람에게도 트렌드가 있다. 면접용으로 준비한 깊이가 없는 답변이다." 면접에는 답이 없다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이 어떤 인재를 원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떨어졌을 것이다.)


흔히 면접은 캐치볼이라고들 한다. 서로의 스타일을 탐색하고, 공을 주고받듯이 질문을 주고받고,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즐거운 대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들에서 내가 경험한 면접은 캐치볼이 아닌, 무서운 속도로 공을 쏘아오는 피칭머신과의 대결이었다. 뿐만 아니라, 단지 본인이 먼저 입사해있는 회사에 지원한 부족한 지원자라고, 당당히 갑의 자세로 갑질을 펼치는 면접관들도 많이 만났다. 나도 불편했고, 나를 인터뷰한 각 회사들도 나를 불편한 지원자로 여겼을 것임에 분명했다.

나는 내가 일하게 될 회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는 회사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충분히 대화를 통해 탐색할 수 있는 면접을 원했고, 공교롭게도 그런 면접은 다국적 기업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다. 다국적 기업의 마케팅팀에서 신입을 채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속전력이 될 수 있는 경력자를 채용하거나, 신입 중에서도 해당 업무의 인턴이나 파트타임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허들이 높다. 또한 채용인원이 적고 한정적이기에, 인터뷰 단계에서 많은 질문을 통해 지원자를 검증하고 또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험과 포부, 그리고 해당 기업의 문화에 얼마나 잘 FIT 하는 지원자인지에 대해, 1시간, 혹은 더 긴 시간을 투자해 알아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에 대한 피드백도 명확하고 나 역시도 납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국내 기업이라도, 경력직 채용의 경우 이와 동일한 프로세스를 거칠 것이다. 그러나 신입에게 이런 호화로운 대화의 기회는 쉬이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자연히 처음부터 더 많은 업무와 책임을 기대하고, 그에 걸맞은 역량이 내게 있는지를 꼼꼼히 평가해 준 다국적 기업에의 입사를 결정하였다.


그 때 그 무한도전 명장면.


우스갯소리로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들은 아무리 잘나도 양반집 사노비에 불과하며, 사노비고 공노비고 할 것 없이 결국 다 똑같다고들 한다. 21세기 최고의 명언이다. 그러나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소속이 정해진 노비가 아니라, 노비가 갈 곳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업과 직장을 선택할 때 각자가 선호하고 따르고자 하는 가치가 다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장, 톱니바퀴의 부품이 되기보다는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과 속도에 대해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직장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책임과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다국적 기업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꽤 충동적이었다. 나보다 1년 먼저 다국적 기업의 인사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친구가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Working Philosophy도 비슷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조언을 주고받기도 하는 직장인 선배인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인사이트를 얻기도 한다. 문득 이런 이야기들을 글로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맥이 지극히 협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기에, 누군가에게는 나의 경험이 또 다른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재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매일 업무에 치이는 직장인이다 보니 비정기적 연재가 되겠지만, 내가 3곳의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배우고 느꼈던 다양한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이것이 취업과 이직을 준비하는, 혹은 다국적 기업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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