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리뷰
올해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한 한 신입생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자가 아니다’라는 반발에 입학을 취소했다. 연세대는 인권·젠더·아동·장애·노동·난민 등을 다루는 교양 수업 <연세정신과 인권>을 보수 기독교 단체가 ‘해당 강의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무분별한 난민 수용을 부추긴다’고 반대하자 필수 수업 지정을 취소했다. ‘O밍아웃’은 퀴어가 자신을 드러낸다는 원래의 의미는 지워진 채 방송과 인터넷에서 하나의 유행어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전기자동차가 날아다니고 해저도시에 사람들이 살 것 같았던 2020년이지만 현실은 사회에 만연한 혐오조차 없어지지 않은 해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목소리를 낸다. 가려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14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두 영화 <두 개이지 않은 성>과 <레즈비언, 카메라, 액션>은 각각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간성(intersex)인의 삶과 미디어에서 재현된 레즈비언의 역사와 현재를 담았다.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개신교 보수단체가 퀴어 혐오를 내비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남성 또는 여성 이성애자로 태어나는 것만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자연적이라고 생각되는 생물학적 성별은 정말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되는 것일까? 간성인들은 자신의 존재로 그 질문에 답한다. 간성은 표준적인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을 가진 사람으로 성염색체, 성호르몬, 성기 등이 일반적으로 여성, 남성으로 구분되는 특질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2000명 당 1명 정도, 전 세계 인구 1.7%라는 적지 않은 인구가 간성으로 태어난다. 간성은 생물학적 특징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성 정체성과는 다르다.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체화할 수도 있고 두 성별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간성인도 있다. 마찬가지로 성 지향성도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다양하게 지닐 수 있다.
자연은 다양성을 사랑한다. 우리는 다양한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출생신고서 성별 체크란, 공공화장실, 자기소개서, 입사지원서, 심지어는 별것 아닌 초콜릿이나 장난감을 고를 때도 남성과 여성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두 개이지 않은 성>은 뉴질랜드 최초로 자신이 간성인임을 밝힌 마니 미첼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린 시절 불분명한 성기를 남성 또는 여성 성기로 바꾸는 ‘정상화 수술’을 받고 후유증에 고통받은 사람들. 부모의 결정으로 수술은 없었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는 이 세상에서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연애와 성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성범죄자의 표적이 되기도 하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영화를 통해 뚜렷한 형체를 지니고 관객에게 전달된다.
2018년, <블랙 팬서>가 개봉했을 때 흑인 사회는 드디어 자신들의 문화와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며 크게 환호했다. 미디어에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과 같다. <레즈비언, 카메라, 액션>에서 레즈비언 영화인들은 퀴어영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고 또 다른 퀴어영화를 만들며 레즈비언을 가시화해 온 방대한 역사를 전한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실험영화와 레즈비언 해방 운동, 90년대 뉴 퀴어 시네마, 그리고 2000년대 상업 영화까지 아우르는 이 다큐멘터리는 바바라 해머의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 샹탈 아커만의 <나, 너, 그, 그녀>, 리사 촐로덴코의 <하이 아트> 등 레즈비언 영화계의 토대가 되고 지금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작품들과 감독들을 영화제작자와 평론가의 시점에서 탐구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빠르게 지나가는 작품과 감독들의 이름을 적기 위해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상이라는 개념은 배제를 필요로 합니다. 퀴어함이란 늘 경계를 넘으려는 거죠.
한 시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에도 영화는 여성 퀴어와 관련하여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70년대 뱀파이어 장르 영화에서 레즈비언 캐릭터들이 등장했던 이유를 흡혈귀와 여성이 모두 남성의 공포라는 점에서 분석하기도 하고, ‘여성적 시선’(여성은 여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을 영화 이론가 로라 멀비를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퀴어영화와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는 시대다. 한국 상업 영화와 드라마는 아직이지만, 넷플릭스만 들어가도 <트링킷>, <반쪽의 이야기>, <어웨이>, <블라이 저택의 유령> 등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부터 SF, 공포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장르의 레즈비언 서사를 즐길 수 있다. <캐롤>, <더 페이버릿>,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처럼 영화제에서 예술적인 업적을 인정받는 경우도 잦아졌다. <레즈비언, 카메라, 액션>이 요약한 레즈비언 영화와 드라마의 흐름은 지금 우리가 여러 작품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한편, 앞으로 더 다양하게 발전된 퀴어 서사를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여준다.
위 영화들은 2020년 12월 1일 개막하는 14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상영작으로, 개막 이후 온라인에서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주소에서 상영작 정보를 확인하고 예매해주세요!
■ 14회 여성인권영화제 개요
슬로건: 우린 흔들리지 않지
기간: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장소: 온라인 상영관 (추후 공개 예정 / 전편 무료 상영)
주최: (사)한국여성의 전화
* 이 글은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