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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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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Aug 07. 2020

<십시일반> 등장인물들은 왜 초상화로 소개되었을까?

드라마 소개 홈페이지는 그야말로 알짜배기 정보들이 모여 있는 보물 창고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드라마의 시청자들에게는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서로 어떤 관계로 엮인 것인지 청사진을 그려보게 하고, 방영 중인 드라마는 홈페이지에 있는 작은 형용사, 문장 하나로 다음 이야기를 유추하거나 결말을 예상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지난주 새로 시작한 MBC 수목 드라마 <십시일반>의 인물 소개가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는 점은 그래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물 소개는 드라마 포스터를 촬영할 때 같이 찍는 개별 포스터와 함께 나오거나 이미 드라마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의 현장 스틸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십시일반>은 주요 인물 9명 모두 유화 느낌 가득한 초상화로 소개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정성 들여 그린 것이 확실한 이 그림들은 배경 위에 스텐실 기법으로 선과 패턴을 덧입힌 듯한 느낌까지도 든다. 이 초상화들은 <십시일반> 오프닝을 제외하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십시일반>은 사진이라는 편한 선택지를 두고 인물 소개를 그림으로 하기 위해 공을 들였을까?




1. 모든 관계의 중심은 화백 유인호


<십시일반>의 주인공 8명은 모두 화백 유인호가 없었다면 마주칠 일도 없었다.

유인호는 대성한 예술가로 드라마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대저택의 주인이다. 그의 작품은 하나에 10억을 넘나들며 가족들에게 상속해 줄 수 있는 유산은 그의 이복동생 독고철에 따르면 약 500억 정도이다. 이 예술가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8명이 모인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는 드라마이기에 그림이라는 표현 양식으로 모든 인물들을 소개한 것은 <십시일반>만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데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초상화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 8명이 가지는 거의 유일한 교집합이 유인호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적합했다. 주인공 9명 중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화백 유인호밖에 없기 때문에 어쩌면 이 그림들 모두 유인호가 그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더욱더 핵심 인물인 유인호와 각 인물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십시일반> 1화 오프닝에서는 유인호의 금고 위치와 유언장의 내용인 담긴 편지를 저택의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해 정성스레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이 저택을 흔들고 있는 사건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등장인물 소개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유인호의 존재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살인사건의 당사자인 화백 유인호도 그 설계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 싶지 않다.



2. 극명하게 드러나는 인물의 성격


그림은 사진처럼 실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변주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상화가 선택한 등장인물의 표정과 얼굴의 각도, 색채라는 변주를 통해 배우가 연기한 인물의 사진보다 캐릭터의 성격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면이 있다.

화백의 친딸 유빛나

먼저, 유인호의 직계가족으로 유일하게 호적에 오른 유빛나의 모습이다. 살짝 내려간 입꼬리와 별다른 감정 없이 응시하는 시선. 일자로 그려진 곧은 눈썹과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얼굴에서 독립적이고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빛나는 화백이 불륜으로 낳은 딸로 엄마 지혜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자신의 학비와 생활비는 모두 벌어서 쓸 만큼 독립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피력하는 편이다. 그림에서 뚜렷한 표정은 없지만 아빠를 중심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실제로 빛나는 엄마가 화백의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싫어하고 다른 가족들이 자신을 적으로 두고 계속해서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까칠하고 괴팍한 아빠와 서글서글한 부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빠를 조금은 안타까워하는 것도 그림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화백 저택의 가정부 박 여사

다음은 화백 유인호의 저택에서 20년 동안 살림을 도맡아온 가정부 박 여사 초상화다.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박 여사도 그저 집안일만 하는 가정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진심으로 웃을 때에는 눈도 휘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방향을 달리하여 곧게 뻗친 눈썹과 살짝 크기가 다른 양 눈이 박 여사도 어떤 꿍꿍이를 감추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박 여사는 화백 유인호를 아내였던 지설영보다도 더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십시일반> 3화에서는 유인호가 자신의 유언에서 박 여사에게도 재산 10%를 상속한다고 명시했음이 밝혀졌다. 겉과 속이 다르고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박 여사를 그대로 표현한 초상화는 <십시일반>의 카오스 속에서 앞으로 박 여사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3. 비슷한 배경색으로 묶이는 비슷한 인물들


일반적인 사진이었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배경에서도 드라마와 관련한 유추가 가능하다. 각 초상화의 배경은 굉장히 원색적이고 시선을 사로잡는 색들이다. 배경색은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비슷한 인물들을 그룹화하고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밝은 푸른빛으로 가득한 김지혜와 독고철의 그림이다.

(왼) 화백의 과거 내연녀 김지혜 (오) 화백의 이복동생 독고철

화백의 과거 내연녀이자 모델이었던 김지혜와 전과 5범이지만 잘 나가는 사업가인 척하는 화백의 이복동생 독고철은 모두 유산 상속에 대한 탐욕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지혜는 허술하고 똑똑하지는 않지만 남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빛나와 자신의 몫의 유산을 확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고 든다. 불륜이라는 과거에 대해서도 그런 게 진정한 사랑이었다며 떳떳하게 생각한다. 늘 서글서글하게 웃고 다니는 독고철도 겉으로만 좋아 보일 뿐 실상은 딸인 독고선도 신경 쓰지 않고 돈만 쫓아다니는 인물이다. 초상화는 탐욕을 당당하게 내보이는 인물들의 배경색을 모두 파란색 계열로 표현했다. 화백의 친조카이자 로스쿨 학비를 계속 받기 위해 화백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하는 유해준의 초상화 배경도 푸른 계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지설영과 문정욱의 그림을 보자.

(왼) 화백의 전 아내이자 현 동거인 지설영 (오) 화백의 매니저이자 친구 문정욱

앞서 본 그림들과 달리 차분하고 채도가 낮아 살짝 어두운 느낌이 만연하다. 20년 전 유인호의 불륜으로 이혼했다 3년 뒤 재결합해 암에 걸린 유인호를 돌보며 동거 중인 지설영은 고상하고 기품이 넘치는 연극 연출가이다. 박 여사가 지설영에 대해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했을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럽고 약한 사람인 것만 같다. 화백의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인 문정욱도 늘 허허 웃으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막 대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의 초상화에서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선 방향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입꼬리는 내려가 있는 지설영과 미소 지은 듯하지만 불안해 보이는 눈빛의 문정욱의 모습에서 미스터리함도 느껴진다. 짙은 남색과 갈색의 배경은 두 인물을 양면성이라는 특징으로 묶고 있다.



4. 희미해진 장르의 경계


등장인물의 초상화는 웹툰 속에서 당장 나온다고 해도 믿을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초상화 그림대로 만화책이 나오든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오든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은 드라마 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십시일반>은 유인호가 죽기 직전 가족들이 모두 모인 생일파티와 유인호가 죽은 그날 밤에 대한 인물들의 개별적인 독백이라는 큰 틀에서 진행된다.

박여사와 김지혜의 독백 장면 / 출처 wavve

1화는 박 여사의 시점에서, 2화는 김지혜의 시점에서 독백이 이루어지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어떤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어두운 공간 속에서 인터뷰어와 등장인물이 거리를 두고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모습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연극적인 성격을 가지는 <십시일반>의 다면적인 성격이 초상화로 인물을 소개한 홈페이지에서도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시청자들 중에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인물 소개를 확인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는 소개 페이지에서 초상화라는 표현 방법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위와 같이 다양한 해석을 펼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신선한 방식으로 드라마의 시작을 연 만큼 앞으로 <십시일반>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가 된다.


독고철의 딸 독고선(가장 왼쪽)이 찍은 가족 셀카


마지막 이미지는 초상화가 아닌 주인공 8명의 성격이 드러나는 가족사진이다.

이들 중 누가 화백 유인호를 살인했을까? 그리고 누가 유인호의 재산을 차지하게 될까?





*인물 소개 그림 출처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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