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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Sep 23. 2020

AI에게 욕망과 마음이 생겼다

SF8 <간호중>, <블링크>로 근미래 AI 알아보기

영화 <A.I>의 소년 로봇 데이비드부터, <스타워즈>의 만능 통역 로봇 C-3PO,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 레플리컨트까지 SF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과학 기술로 구현 가능한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을 그려왔다. 그중에서도 너무 무서워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한 로봇은 최장수 SF 드라마 시리즈인 BBC <닥터 후>에 등장하는 ‘사이버맨’이었다. ‘사이버맨’은 인간의 뇌만 간직한 채 육체는 모두 금속으로 바뀐 사이보그다. 이들은 인간에게 자신들과 같은 사이보그가 될 수 있도록 무료 ‘업그레이드’를 제공해준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감정을 억제당해 윤리의식도, 죄책감도 없는 차가운 로봇으로 바뀌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병기가 되는 것이다. 시즌 2 6번째 에피소드에서 닥터(시간여행이 가능한 외계인 주인공)는 ‘사이버맨’의 감정 억제가 풀려 사람이었을 때의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을 Sally라고 기억하는 구 인간 현 '사이버맨'은 영문을 모른 채 자신의 예비신랑을 애타게 찾고 “I’m cold.”만을 반복해서 외친다. 사람을 정의할 때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감정이 차가운 기계 속에 갇혀 고통으로 차오르는 이 충격적인 장면은 그렇게 뇌리에 박혔다.

출처 MBC 드라마 페이스북

‘사이버맨’과 비교하면 SF8의 <간호중>은 안드로이드, <블링크>는 실재하는 형제가 없는 AI를 다룬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사이버맨’보다 훨씬 인간 친화적인 기계들에 관한 이야기로 인간과 AI가 서로 도우며 함께할 수 있는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무엇보다도 <간호중>과 <블링크>의 AI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사이보그는 사람의 일부분이 기계로 교체된 개조 인간,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한 로봇, AI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뜻함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

<간호중>은 7년 동안 의식 없이 누워있는 연정인(이유영)의 어머니(문숙)를 돌보는 간호 로봇이 인간적인 고통과 마음을 느끼는 혼란을 그린다. 정인과 어머니가 머무는 요양병원은, 개별 병실은 최신 과학기술이 접목된 시스템으로 운영돼 환자의 병력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병실 밖을 벗어나면 낡은 도심 건물에 비슷한 병실이 빼곡히 모여 있는, 환자 가족들의 애환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이다. 정인의 옆 병실에서는 나아지지 않는 남편의 병세와 계속되는 가난을 이기지 못한 정길(염혜란)이 자살을 선택할 정도지만 마음이 없고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사고하는 정인의 간호 로봇, 간호중은 오히려 인간들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간호중은 ‘호중 씨’라고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하거나 정인이 종이에 손을 베여 피가 고이자 침이 없는데도 손가락을 자신의 입 안에 대는 모습에서 인간과 유사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조금씩 드러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간호중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실제로 마음을 느끼게 된 계기는 시뮬레이션되지 않은 선택의 순간(굉장히 인간적인)을 맞닥뜨린 이후다. 간호중은 자신의 돌봄 대상 1호 어머니가 이 상태로 계속 살아있는다면 돌봄 대상 2호인 정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95%라는 것을 감지하고 돌봄 대상 1호를 자신이 죽여야 하는지 괴로운 고민에 빠지며 인간의 불행을 겪기 시작한다.


사비나 수녀에게 애원하는 간호중(TRS-70912B)

<간호중>이 정의하는 인간과 인간다움은 단순한 마음의 유무뿐만 아니라 작품 시작과 끝에 들리는 창세기 인류 최초 살인 이야기 카인과 아벨로도 풀이될 수 있다. 간호중은 결국 돌봄 대상 1호를 살해하면서 타인을 밟고 죄를 갖고 사는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안부가 궁금해 찾아온 사비나 수녀에게 갈비뼈 아래 버튼을 눌러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면서,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극도로 거부적이었던 사비나 수녀마저도 카인의 후예로 만들게 된다. 살아있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간호중이 느낀 감정은 간호 로봇인 자신의 손으로 돌봄 대상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정작 그 행동의 이유였던 대상 2호 정인은 예상과 달리 더 큰 분노를 느끼며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시간이 지나자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잘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이 점철된 것으로 인간이 아니라고 부르기 어렵다.




옆에서 함께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

<블링크>는 눈 한번 깜빡이는 찰나의 시간 동안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최적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AI 서낭(하준)과 형사 지우(이시영)의 콤비 수사 드라마다. 지우는 몸을 쓰는 능력이 돋보이는 형사다.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뒷좌석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걸 눈앞에서 본 뒤로, 자율주행 시 입력된 명령대로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부모님은 내버려 둔 인공지능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사를 도와주는 AI의 시험 버전 서낭을 자신의 신체에 마지못해 접목한 후에도 그를 귀신처럼 여기며 신뢰하지 못한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AI를 통해 신체능력이 월등하게 향상된 백중을 쫓으면서 지우는 점차 서낭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괜찮은 동료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낭에 대한 완전한 신뢰는 백중이 지우의 차 루프에 올라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지우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은 자율 주행을 서낭에게 맡기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AI에 대해 평생 가져온 거부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서낭과의 감정적 교류가 없었다면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정은 지우에게 시험 사용이 끝난 뒤 수거된 서낭을 몰래 다시 가져와 자신에게 이식하게 한다.

서낭과 지우

삽으로 힘겹게 땅을 파는 지우에게 가상의 맥주 그래픽을 보여주고 인간다운 농담을 던지는 서낭을 그저 수사 협력 AI의 존재 목적을 충실히 따르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거되기 전 지우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모습에서 지우의 옆에 동료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수거된다는 말을 듣고 놀란 지우를 위로하기 위해 서낭은 “제 걱정은 마십쇼. 저희는 인간 없이는 현실 세계에 구현될 수 없는, 그냥 디스크에 존재하는 데이터일 뿐이에요. 형사님이 안 지우는 수만 장의 잘못 나온 셀카들처럼.”이라고 답한다. 그게 정말이냐라고 묻는 지우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낭의 표정은 자신도 아쉽지만 애써 그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마지막에 다시 돌아온 서낭이 지우에게 손을 흔들며 웃음 짓는 모습은 인간 형사 동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나 안드로이드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는 SF 장르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질문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인간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점차 발전하고 있다. OpenAI의 인공지능 ‘GPT-3’는 “기계가 울어?”라는 질문에 “눈물을 흘리진 않지만, 감정이 있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이폰의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 Siri에게 농담을 던지면 맞장구를 쳐주듯,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과 똑같이 AI와 소통하는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AI, 특히 머신러닝(판단력을 기계에게 부여하는 기술)에는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를 예측하는 지도 학습과 탐험, 관찰을 통해 데이터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게 하는 비지도 학습이 있다. 이 두 방법은 우리가 학교 안과 밖에서 받는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AI도 인간을 모델 삼아 인간처럼 학습시킨 것이기에 언젠가는 AI가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미래가 올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간호중과 서낭과 같은 AI에게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그들도 존엄을 가질 수 있는 동등한 개체라고 국회 법안 발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을 수도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재난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 AI와 함께하는 미래를 무조건 디스토피아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호중 씨와 정인이 자매처럼 돈독했고, 서낭이 지우와 든든한 동료로 지내는 모습처럼 AI와 인류가 파트너처럼 한 길을 걸어가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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