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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발까마귀 Sep 07. 2023

내면의 연극

끊임없이 벌어지는 내적 드라마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집 근처 언덕길을 오르며 가벼운 산책 겸 운동을 하였고,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냉장고를 보니 닭죽과 베이글이 있어서 닭죽은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베이글에 사워크림을 발랐습니다. 그때, 누군가 집 테라스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테라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자동반사적으로 그 사람은 제 룸메이트의 여자친구인 B일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B의 자동차가 집 밖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a. 테라스로 나가서 B와 같이 밥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b. 집안 테이블에 앉아 혼자 먹을 것인가.


저는 아침에 테라스에 앉아 있다 벌에 쏘일 뻔한 경험이 있어, 집안 테이블에 앉아서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B에게 다가가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일어났지만, 그냥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어색함과 불편함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제가 앉은 집안 식탁과 테라스의 테이블 간의 거리는 1M 남짓밖에 안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벽이 있어 서로를 보지는 못하지만, 옆에 큰 미닫이 문이 있어 열린 공간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온갖 잡생각이 몰려왔습니다. 


B가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보고 왜 자기랑 밥을 안 먹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벌 때문에 안에서 먹는다고 하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그것보다 더 어색한 상황은 제 룸메가 테라스로 와서 B와 같이 밥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자동적으로 그 상황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끔찍했습니다. 


룸메와 B가 즐겁게 밥을 먹고 작은 벽 건너편, 테라스 소리가 다 들리는 집안 테이블에서 홀로 밥을 먹는 제 모습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게다가, 그 둘이 저에 대해서 뒷담을 하게 되고 또 그 후, 집안으로 들어와 저와 눈이 마주친다면!?!?!? 


맙소사, 그것은 너무나 잔인할 만큼 어색한 상황이고 저는 그것을 마주하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체할 수도 있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재빠르게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언가에 쫓기듯 밥을 먹는데, 그때 누군가 테라스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은 제 룸메라고 생각했고 빨리 이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는 강박감에 급하게 마지막 남은 베이글 한 조각을 제 입속으로 구겨 넣었습니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것과 비례하여 베이글을 씹어 넘기는 속도도 증가하였습니다. 아! 발자국 소리가 멈춘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달았습니다. 저는 도망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테이블에 앉지 않았고 곧이어 미닫이 문이 열렸습니다.


오 마이 갓. 그 사람은 제 룸메도 여친B도 아닌 다른 친구 C였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 가득했던 긴장감은 사르르 녹아버렸고, 저는 안심하며 남아있던 베이글을 천천히 씹어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와 C는 아침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알고 보니 애초에 테라스에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이 모든 드라마는 제 착각에서 시작한 쇼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인데 저 자신은 너무나 심각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제 생존에 어떠한 위협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위협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보면 이러한 일들이 가득합니다. 채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 내면은 수많은 드라마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작은 오해로부터 시작합니다. 드라마가 펼쳐질 때 저에게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저는 그 쇼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도 이런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고, 그때에도 저는 그것의 희생자가 될 수도 아니면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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