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
여행지를 결정하고 여행 준비를 하는 그 설레이는 시간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정은 숙소를 알아보고 검색하는 시간들이었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지에서 보낼 행복한 시간을 상상하며, 그곳에서의 멋진 시간을 채워줄 숙소를 검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여행의 일부였다.
얼마 전 읽은 김다영 작가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를 보면, 작가는 평소에도 여행이 가고 싶을 때면 전세계의 퀄리티 있는 부띠끄 호텔들을 모아 놓은 디자인호텔스 사이트를 검색한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다. 대신 나는 호텔 사이트가 아니라 에어비앤비 어플을 하루에도 몇번씩 켠다. 졸립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 동안,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들을 상상하며 그곳의 멋진 숙소들을 검색한다. 여행지별로 저장목록을 만들어두고, 마음에 드는 숙소가 있으면 위시리스트에 저장하는 게 어느새 취미가 되었다. 에딘버러, 더블린, 베를린, 샤모니... 가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가고픈 곳들의 숙소를 검색하고, 그곳에서 보낼 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힐링감을 느낀다.
나 역시 호캉스를 좋아하고, 호텔이 주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큰 마음을 먹고 떠나는 여행지에서 커다란 호텔보다 작은 로컬 숙소들을 주로 찾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미 검증된 럭셔리하고 멋진 호텔들이 많은데, 왜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도 에어비앤비 어플에서 숙소를 검색하며 재미를 느끼는 걸까?
가격 경쟁력도 물론 주요한 이유가 된다. 같은 가격이면 호텔룸보다 더 널찍한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로컬 숙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간의 여행과 숙소에서 느꼈던 만족감을 떠올려보면, 호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1박에 40만원을 호가하던 마우이 섬에 있는 그랜드 와일레아 월도프 아스토리아 리조트보다도, 동남아에서 갔던 풀빌라가 딸린 럭셔리했던 리조트보다도, 허름하고 시설도 특별하지 않았던 이탈리아 산골 마을 라벨로의 작은 비앤비와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낡은 숙소가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 걸 보면, 분명 무언가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대체 그게 뭘까?
사람마다 각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제일 큰 이유는 "이곳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특별한 경험"에 대한 기대감"이다. 옆에 있는 방도 내가 묵고 있는 방과 비슷한 구조, 비슷한 생김새일 것이 뻔히 짐작되는 커다란 호텔과는 달리, 100개의 숙소가 있다면 각기 다른 100개의 매력을 뽐내는 로컬 숙소들. 그래서 그 안에서 내 취향과 맞는 분위기와 인테리어의 숙소를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여러가지면에서 호텔보다 리스크가 훨씬 크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기 위해 더 지난하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 노력 끝에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았을 때 얻는 즐거움도 훨씬 크다.
이렇게 내 취향에 맞춰 고른 곳들은 실제로 기대했던, 아니 때로는 기대 이상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마을, 라벨로에서 머물렀던 까를로의 작디 작은 비앤비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그 작은 비앤비에는 레몬과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마당에는 토마토와 바질도 자라고 있었는데, 그걸 바로 따서 호스트가 요리를 만들어줬다. 마치 이탈리아 시골에 있는 누군가의 집에 놀러온 것은 느낌은, 내가 이탈리아 호텔에 머무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내가 느끼는 또 하나의 커다란 매력은 바로 현지인 호스트들과의 소통이 주는 의외의 즐거움이다.
내가 사교적이거나 외향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또 외국어가 능숙한 것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이용하는 과정에서 좋은 호스트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은 때로 무척 재밌고 즐겁다.
외국 여행 중에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교류할 경험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근데 비앤비 숙소들을 이용하면 호스트와 이런 교류가 가능하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메시지앱을 통해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고 답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만나서 숙소를 안내받고, 또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추억들이 쌓인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들이 몇 군데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머물렀던 스파르타코의 숙소가 떠오른다. 호스트였던 스파르타코는 늦은 밤 체크인을 해서 주변 지리를 잘 못 깨우쳤을 나를 위해,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을 때 다시 약속을 잡고 만나서 숙소 주변을 안내해줬다. 지도를 들고 다니며 주차하기 좋은 곳을 일일이 알려주고, 주변 가게들과 맛집들을 안내해줬다. 그리고 떠나던 날, 비행기 시간 때문에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했는데 일부러 시간에 맞춰 배웅을 나와 주었다. 머나먼 동양에서 시칠리아의 그 작은 골목 숙소까지 찾아온 내가 신기해서였는지, 이런저런 이야기와 설명도 많이 들려줬는데 그런 기억들이 여행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런 경험들이 여행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준다.
물론 이런 로컬 숙소들이 장점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호텔을 예약할 때보다 신경써서 점검하고 살펴야 할 것들이 훨씬 많다.
로컬 숙소의 단점과 주의사항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