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에어비앤비, 유쾌했던 파올라의 아파트
큰마음을 먹고 무려 2주간이나 휴가를 내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떠났던 2017년 여름휴가의 첫 시작은 로마였다. 로마-이탈리아 남부-피렌체-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13박 15일 여행의 시작이 더욱 두근두근 했던 것은 내 생애 처음, 에어비앤비를 예약했기 때문이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이상하게도 로마와 바르셀로나, 이 두 곳에서는 꼭 현지인 느낌이 드는 숙소에서 머물러 보고 싶었다. 그래서 테르미니역 근처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테르미니역 근처가 치안이 안 좋다는데... 호텔도 아니고 비앤비인데 괜찮을까?'
'호스트랑 어떻게 만나지? 만약 도착했는데 연락이 잘 안되면 어쩌지?'
'호스트랑 만났는데 말이 잘 안 통하면 어쩌지? 호스트가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는데 내가 못알아 듣는 건 아닐까?'
'숙소가 사진에서 본 거랑 다르면 어쩌지? 시설이 별로이면 여행 망칠텐데...' 등등 호텔을 예약했을 때와는 수준이 다른 걱정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깜깜한 저녁에 헤매지 않고 숙소를 잘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이 와중에 비행기는 로마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고,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테르미니역까지 이동할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도 지연되었다. 원래 호스트에게 체크인을 약속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미 늦을 게 너무 뻔했다. 호스트에게 비행기가 지연되었다고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다며, 숙소에서 기다릴테니 걱정말라고 말해준 호스트 덕분에 조금은 안심을 하고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고 테르미니역까지 도착했다.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의 여름밤이었지만 이미 늦은 시간에 주위는 컴컴했다. 늦은 밤의 테르미니는 듣던대로 조금 무서웠다. 다행히 남편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극도의 긴장은 피할 수 있었지만, 어두운 밤에 낯선 나라 낯선 도시, 그것도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는 곳을 지날때는 어쩔 수 없이 몸도 마음도 좀 움츠러들었다.
숙소는 테르미니역에서 지척 거리에 있었다. 덕분에 어두운 골목길을 헤맬 필요 없이 테르미니역 동쪽 게이트에서 2-3분 정도만 직진하면 바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숙소 건물 앞에서 호스트가 알려준대로 벨을 눌렀다. 두근두근. 이제 외국인 호스트와 첫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다.
벨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밝고 쾌활한 표정과 말투의 파올라(Paola)가 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큰 소리로 "차오(Ciao)~!!"하고 반겨주는 파올라 덕분에 지금까지 긴 시간 긴장하며 가지고 있던 걱정들이 다 사라졌다. '와...제대로 찾아왔구나! 캄캄한 밤에 숙소도 제대로 찾았고, 호스트도 만났다! 일단 숙소까지 왔으니 됐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모든 게 안심이었다.
파올라의 아파트는 우리나라로 치면 3층, 유럽에서는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유럽의 많은 건물들이 그렇듯, 엘레베이터는 따로 없었는데, 계단을 올라갈 때 파올라가 내가 들고 있던 캐리어를 번쩍 들어서 옮기는 걸 도와주었다. 괜찮다고, 내가 들고 간다고 사양을 했는데도, 역시 괜찮다며, 자기 힘 세다고 농담까지 하면서 짐을 옮겨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파올라의 아파트, 그러니까 나의 첫 에어비앤비 숙소의 인상은 사이트 사진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깔끔하고 무척 아늑했다. 파올라가 숙소 내부를 하나하나 안내해 주었는데, 주방도 없는 것 없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웰컴 선물로 빵과 쥬스, 물, 우유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캡슐커피도 넉넉히 세팅되어 있었다.
빌트인 냉장고도 냉장실, 냉동실 모두 사이즈가 작지 않았다. 냉동실에 얼음 트레이가 있어서 얼음을 얼릴 수 있었는데, 덕분에 로마에 머무는 내내 더위에 지칠 때 숙소에 돌아와서 세상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실 수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기가 쉽지 않은 로마에서, 그 뜨거운 여름날 숙소에서 만들어 마셨던 시원한 커피 한 모금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체크인을 했을 때가 밤 10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파올라는 열심히 준비된 지도 위에 표시를 해가며, 숙소 근처 명소들과 로마 시내 관광지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파올라는 영어를 꽤 잘했는데, 분명 하는 말은 영어인데 억양이 이탈리아어 억양이다보니 얼핏 들으면 이탈리아어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액센트 강한 이탈리아어 억양으로 꽤 넉넉한 시간 동안 숙소의 시설과 숙소 근처 대중교통, 그리고 로마 시내 주요 관광지들로 가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세세하게 신경써주는 호스트 덕분에 낯선 도시에 왠지 든든한 지인이 생긴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로마에서 맞이하는 이틀째이자 본격적인 로마 여행의 첫 날이 밝았다. 일어나서 침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낡고 허름한 로마 시내 건물들을 보니, 내가 서울이 아닌 로마에 와 있구나 하는 실감이 번쩍 든다. 그러면서 나 같은 직장인에게는 사실 쉽지 않은, 무려 13박 15일의 긴 휴가가,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탈리아 사람들 흉내를 내며 자그마한 에스프레소잔에 커피를 내렸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지~!" 하며 남편이랑 같이 진한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그리고 빵과 함께 간단히 아침을 시작했다.
로마에서 숙소를 잡을 때 제일 중시했던 것은 깨끗한 시설과 위치였다. 내가 머물렀던 에어비앤비는 현관으로 나와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일직선상에 테르미니역이 보일 정도로, 테르미니역에서 가까웠다.
테르미니역은 명실상부한 로마 교통의 중심지라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편하지만, 지하철역도 있고, 버스 노선도 많아서 로마를 여행할 때 여러모로 편리했다. 덕분에 이상 기온으로 낮기온이 무려 40도를 넘나들었던 뜨거운 로마에서, 에어콘이 시원하게 나오는 버스를 최대한 이용하며 고생하지 않고 로마를 여행할 수 있었다.
파올라는 내가 로마에 머무는 동안 여러번 메시지로 불편한 건 없는지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체크아웃 하기 전날에는 로마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는지를 물어봐주었다.
우리가 아말피로 간다고 했더니 아말피에 가면 레몬첼로, 레몬사탕 같은 기념품을 사면 좋다면서, 추천하는 쇼핑 아이템들과 맛집들을 문자로 잔뜩 알려주었다. 실제로 파올라가 알려준 맛집과 아이템들은 남부 여행을 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되었다.
두근두근 걱정을 안고 시작했지만 로마에서 시작한 나의 첫 에어비앤비 스테이는 꽤 성공적이었다. 첫 스테이였던 만큼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호스트와 연락을 주고 받는 것도, 호스트를 만나는 것도, 그리고 호텔이 아닌 이런 로컬 숙소에서 머물러보는 것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그 만큼 신선하고 재밌었다.
첫 에어비앤비 스테이의 기억이 꽤 좋아서, 이후에도 여행을 하면서 이런 로컬 숙소들을 많이 이용했다. 숙소들마다 스토리가 생겼고, 추억도 쌓였다. 지금 당장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곳도 있었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피하고 싶은 숙소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여행의 경험치도 높아졌고, 추억은 더 깊어졌다.
▶ 유럽에서 숙소를 구한다면 엘레베이터 여부를 확인하자.
엘레베이터가 없어도 2-3층 정도까지는 참을만하지만, 4층을 넘어가면 여행이 꽤 괴로워질수 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4층 이상의 높이를 올라가는 것은...생각보다 고역이다.
▶ 에어비앤비를 포함해서, 유럽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는 체크인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각이라면 체크인이 번거로워질 수 있다.
유럽 호텔 중에는 24시간 리셉션이 없는 호텔들도 많으니, 이건 호텔도 마찬가지.
▶ 수압에 민감한 여행자라면, 숙소 예약할 때 후기를 통해 수압 여부도 꼼꼼히 챙겨보자.
로마에서 머물렀던 파올라의 숙소는 모든게 다 만족스러웠는데, 유일한 단점이 너무 약한 수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