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닝커피 Sep 09. 2020

05 이탈리아의 산골마을 라벨로의 작은 집

허름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디보다 크게 채워주었던 까를로의 비앤비

이탈리아 남부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라벨로에 자리잡은 까를로(Carlo)의 비앤비는 도착하는 과정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라벨로는 아말피에서 자동차로 20-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다. 우리는 아말피에서 무려 60유로의 택시비를 내고 라벨로로 들어왔다. 이틀 전, 아말피에 처음 도착했던 날, 경사진 높은 곳에 있는 숙소에 오르느라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했던 우리는, 아말피보다도 더 낯설고 작은 마을이라는 라벨로에서는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큰 맘을 먹고 무려 60유로나 지불하고 택시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 기사는 어딘지 모를 애매한 곳에 우리를 내려주고는, 여기가 맞는 것 같다며 그렇게 가버렸다. 


우리가 찾는 작은 비앤비 숙소의 이름은 "Rosa e Valentino"였는데,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에서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런 숙소는 찾을 수 없었다. 아니, 그 주변에는 숙소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더웠고, 택시를 타고 올 때부터 대놓고 과도한 팁을 요구하는 택시기사의 태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남편과 나는 기분이 한껏 예민해 진 상태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곳에 내려졌고,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얼른 숙소를 찾아야 했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하면 분명 이 근처에 숙소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주변에 숙소처럼 보이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와. 진짜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침 택시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이 버스 정류장 근처였는데, 정류장 벤치에 이탈리아인 할아버지 3분이 앉아 계셨다. 마을에 사시는 분들처럼 보여서 왠지 이 분들이라면 내가 찾는 숙소를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때는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탈리아어도 못하면서 할아버지들께 숙소 이름과 주소가 씌여진 바우처를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셨지만, 나의 애절한 눈빛과 손짓 발짓으로 길을 묻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채셨다. 

택시가 우리를 내려줬던 라벨로 마을 버스 정류장.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가 찾는 비앤비가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할아버지들 세 분이서 내가 드린 숙소 바우처를 보고 몇 분동안 계속 토론을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이탈리아어를 모르지만, 눈치로 짐작해보니 한 분이 여기가 어디쯤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 두분은 아닌 것 같다고, 어딘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억양이 센 이탈리아어 대화는, 내가 듣기에는 꼭 싸우는 것처럼 들렸다. 할아버지들조차 이곳을 모르신다고 하면, 나는 대체 여기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걸까. 한 여름 이탈리아의 태양은 너무 뜨거웠고, 우리는 더위에 점점 지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애절한 눈빛으로 할아버지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토론(?)을 끝냈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손을 잡고 정류장 앞에 있던 절벽처럼 보이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저기는 산..인데? 바로 앞에 숲만 보이는데...설마.. 맞은 편에 보이는 저 산에 이 숙소가 있다는 건가...? 그럼 나는 저기를 어떻게 가야 하지..? 아니, 저기가 맞기는 한거야? 할아버지들은 내 질문을 알아 들으시긴 한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할아버지들이 내가 찾는 숙소가 저 맞은편 너머에 보이는 마을이라고 하시는 줄 알고 정말 식겁했다. 저기라고 하면...대체 어떻게 가야 했을까 ㅋㅋ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가서 가리켜주신 곳은 다행히 맞은 편에 있는 산속 마을은 아니었다. 내가 서 있던 그곳 아래쪽에 자리잡은, 허름하고 작은 집이었다. 맞은편 산으로 가야 한다고 하신 게 아니라 천만 다행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손 끝이 가리킨 곳을 보자니, 한숨부터 나왔다. 


'세상에... 저곳이 내가 예약한 숙소라고...? 저... 가건물 처럼 보이는 저곳이...?'

처음에 내가 찾는 숙소가 저기라고 알려주셨을 때 흠칫 놀랐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찾아온 곳이 저기라고?



일단 할아버지들께 감사인사를 하고, 저곳이 정말 내가 예약한 숙소가 맞는지 확인해보러 가기로 했다. 멀리서 얼핏 보기에 외관이 너무 허름해 보여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부디 저 곳이 맞기를, 그래서 더 이상 숙소를 찾아 헤매지 않기를 바라며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마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문이 있어서 벨을 눌렀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인터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절박한 목소리로 "I am guest, OO"라고 이름을 말했다. 그러면서 물어봤다. "Is this Rosa e Valentino, right?" 다행히 인터폰 너머의 목소리는 "Yes! Just a wait!"하고 말해주었다. 


잠시 후에 수줍은 표정의 젊은이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내 이름을 말했더니 들어오라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 여름의 이탈리아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숙소를 찾는 과정은 꽤 힘들었지만, 일단 체크인을 하고 나니, 숙소의 매력이 곳곳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를 안으로 안내해준 그 수줍은 표정의 젊은이는 이 곳의 호스트인 까를로였다. 이 숙소는 까를로와 어머니, 할아버지 등 3대가 함께 운영하는 작은 비앤비였다. 


룸은 총 3개 뿐이었다. 룸도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다. 깨끗하고 깔끔했지만, 소박한 룸이었다. 아말피에서 라벨로까지 타고 온 택시 비용도 아깝고, 택시 기사도 마음에 안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우리는 그때까지만해도 우리가 짧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굳이 이 산골마을에 1박을 할애한 게 잘한 선택이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소 굳어 있던 우리의 마음은 호스트인 까를로와 이야기하며 점점 바뀌어 갔다. 까를로는 우리에게 주방과 거실을 비롯한 숙소 곳곳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마당도 구경시켜주었다. 마당에는 레몬, 토마토, 바질을 비롯해서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이 자라고 있었다. 모두 다 식구들이 직접 키우는 거라면서 무척 자랑스러워했는데, 그 모습이 왠지 정겨웠다. 그리고 할아버지인 Valentino가 숙소 앞에 있는 포도밭을 가꾼다는 설명과 함께 포도밭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굳이 일하고 계신 할아버지를 불러서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까를로의 가족들이 레몬, 토마토, 바질 등을 키우던 마당. 호스트가 마당을 직접 구경시켜주니, 왠지 이탈리아 시골 친구집에 놀러온 기분이었다. :)


아직 여행의 경험치가 많이 쌓이기 전이었던 이때는 낯선 여행지에서 이렇게 온 가족의 인사를 받아본 게 처음이라, 이런 경험이 무척 낯설고 생소했다. 나는 그저 부킹닷컴을 통해 숙소를 예약했을 뿐인데, 평점이 9.8점으로 무척 높고 후기가 좋아서 예약했을 뿐인데, 이렇게 온 가족에게 환대를 받을 줄이야. 조금은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분명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호텔에 머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 어떤 기분이었다. 


'오호...이 숙소, 왠지 느낌이 좋은데?'




우리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굳이 이 작은 산골마을 라벨로에서 투숙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바로 라벨로 페스티벌(Ravello Festival) 때문이었다. 라벨로에서는 매년 여름에 꽤 긴 기간 동안 음악 축제가 펼쳐진다. 특히 빌라 루폴로에서 아름다운 티레니아해를 배경 펼쳐지는 야외 공연은 한 여름밤을 더없이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바로 그 공연이 대부분 저녁 늦게 시작하고 자정이 거의 다 되어야 끝나는데, 그 때는 대중교통으로는 아말피나 포지타노 등 인근 도시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라벨로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이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았었다. 


처음에는 참으로 희한한 곳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했던 까를로의 비앤비는 실제로 여행을 하며 보니, 오히려 제법 위치가 좋은 편에 속했다. 라벨로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서 버스를 타고 아말피나 포지타노로 이동하기에도 좋았고, 택시가 들어올 수 있는 곳과도 가까워서 이동이 편했다. 또 라벨로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빌라 루폴로와 라벨로의 메인 광장까지도 5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라서, 늦은 밤에 공연이 끝난 후에도 안전하게 숙소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부신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햇살에 잠이 깼다.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니, 눈 앞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라벨로의 풍경이 펼쳐졌고, 귀에는 경쾌한 새소리가 들렸다. 문득 내가 이탈리아 남부, 그것도 이 작은 산골마을인 라벨로에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게 무척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까를로의 비앤비는 Bed & Breakfast라는 이름답게, 조식을 제공해주었다. 룸이라고 해봤자 2인용 룸 3개뿐이라서, 조식 테이블도 2인용 테이블 3개 뿐이다. 날씨가 좋아서 테이블은 야외에 세팅되어 있었다.  마당에 차려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까를로가  아침식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선드라이드 토마토와 샐러드는 집에서 키운 토마토와 바질로 만들었고, 테이블 한켠에 세팅된 잼들도 모두 직접 만든 홈메이드 잼이니까 맛있게 많이 먹으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소박하게 보이는 까를로네 비앤비의 아침식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직접 재배한 토마토와 바질로 만들었다는 토마토 샐러드와 선드라이드 토마토는 정말로 맛이 좋았다. 특히 선드라이드 토마토는 이후에도 어디에서도 이만큼 맛있는 것을 맛보지 못했다. 질 좋은 올리브유에 직접 재배한 토마토로 만든 선드라이드 토마토는 정말로 맛이 좋았다. 시원한 과일쥬스로 목을 축이고, 맛있는 크로와상에 직접 집에서 만든 다양한 종류의 잼을 발라서 갓 추출한 모카포트의 커피와 함께 하는 아침식사는 소박하지만 최고의 식사였다. 


까를로가 직접 내려준 모카포트의 커피도 정말로 맛이 좋았다. 커피가 너무 맛있다고 하자, 갑자기 주방에 가서 모카포트를 들고 나오더니 이걸로 직접 내린 거라며, 모카포트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커피에 대해 무언가 굉장한 자부심이 느껴졌는데, 그런 모습이 하나하나 다 재밌고 정겨웠다.   

집에서 가족들이 직접 재배한 토마토와 바질, 과일들과 손수 만든 잼으로 차려준 아침식사는 소박하지만 최고의 식사였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에도 까를로는 라벨로에 대해, 또 인근에 있는 아말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할 때, 우리가 들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도 캐리어를 직접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들어다 주었다. 그러면서 라벨로에서 살레르노를 거쳐 피렌체로 가야 하는 우리의 여정에 대해 이것저것 세심하게 체크해주었다.


라벨로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굳이 이렇게 외진 산골마을까지 왔어야 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를로의 숙소를 떠날 때는 여기에서 1박만 하는 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 뿐이었다.  


할아버지, 어머니, 아들 가족이 모두 나와 환영을 해주고, 마당에서 토마토와 바질, 레몬, 포도 채소를 키우며, 재료들로 아침을 차려주던 곳. 조용한 산속에 울려퍼지는 새소리와 눈부신 햇살에 잠을 깼던 이곳에서의 아침은 그 이후에도 꽤 많은 여행을 했던 나에게 여전히 무척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까를로의 집에서 머물렀던 경험은 여행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주었다. 숙소가 그 여행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특별한 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처음 알려준 곳이 바로 3년 전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산속마을 라벨로에서 찾았던 까를로의 비앤비였다. 


그리고 꼭 화려하고 럭셔리한 시설이 아니라도 충분히 최고의 숙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설은 소박했지만 따뜻하게 맞이해 준 사람들 덕분에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속에는 최고의 숙소로 남아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바로 며칠 전 로마에서 보냈던 파올라의 아파트, 그리고 라벨로에서 보낸 까를로의 비앤비까지, 연달아 경험한 로컬 숙소에서 기대 이상의 특별한 추억과 경험을 쌓았다. 로컬 숙소로 떠나는 여행에 흠뻑 빠지게 된 계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때 주의할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