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파쿠르는 쓸모가 없다. 지금까지 쓴 이야기는 쓸모없는 파쿠르를 쓸모있게 만들기 위해 발버둥친 흔적이다. 나는 파쿠르를 연습할 때는 쓸모를 묻거나 따지지도 않는데 사람들에게 파쿠르를 설명할 때는 온갖 쓸모를 갖다 붙여왔다. 사람들은 엉덩이가 무겁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파쿠르를 하면 뭐가 좋아요?"라고 시도때도 없이 질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에고(ego)가 문제다. 에고를 이끄는 2개의 바퀴 - 욕망과 두려움이 파쿠르에 이야기를 입힌다. 나는 소위 '성공'하고 싶었다. 한국 사회에서 좋아하는 일로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파쿠르가 정말 쓸모없지만은 않다. 실제로 체력도 좋아지고 정신도 강해지며 건강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파쿠르의 이점을 여기서 더 말해봐야 앞서 서술한 글들을 다시 번복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쓸모를 따지고 묻는 일은 되려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떤 운동효과, 정신적 혜택, 물질적 이익, 보상, 안정된 미래를 기대하고 파쿠르를 연습하면 딱 거기까지다. 파쿠르는 자신이 갖고있는 기대치만큼 보여준다. 파쿠르로 돈을 벌고자 한다면 돈을 벌 수 있다. 파쿠르에서 직업을 얻고자 하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마음, 쓸모를 따지지 않는 마음으로 파쿠르를 연습할 때 파쿠르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로 찾아온다. 추상적인 말을 하는게 아니다. 점프 연습하는데 허벅지 근비대를 따지는 사람과 점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누가 더 점프를 잘 하겠는가? 연구는 학자들의 몫이고 그들은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는 상아탑을 쌓는다. 나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미래를 향한 욕망은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쓸모를 따져 물으면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든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다. 이제 파쿠르로 무엇이 되려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도, 이름에 연연하던 것도 내려놓았다. 어떤 수단이나 목적의 도구로서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시는 마음으로 긍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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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어서 움직이는게 아니라
움직이니까 이유를 찾는구나.
이유를 찾으면
어느새 몸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