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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21. 2023

인터넷이 파쿠르에 준 영향


영국은 2017년 세계 최초로 파쿠르를 국가 스포츠로 인정하였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극복한 영국 파쿠르 커뮤니티의 힘이며 커뮤니티에 기반한 교육의 힘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나는 지난 3일 동안 랑데부 2018 이벤트를 지도하면서 영국 파쿠르의 성장동력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보편성을 띈 파쿠르와 인터넷 사이의 문제점을 영국이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스테판 비그로(Stephane Vigroux)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내가 태국 방콕에 갔을 때,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갔을 때, 그리고 여러 다른 나라들을 갔을 때에도 랑데부 같은 이벤트와 이 이벤트를 지속하는 커뮤니티는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참가자들은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3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소수의 몇몇 사람들만 파쿠르를 하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파쿠르가 이렇게나 발전하고 전파된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 당시만해도 파쿠르가 널리 알려지게 될 줄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세르비아 출신 파쿠르 코치 보키(Boki)가 제롬 리브렛(Jerome Lebret)이 운영하던 세계 최초의 인터넷 파쿠르 포럼 Parkour.net 이야기를 꺼냈다. 


 "세르비아에서 처음 파쿠르를 시작한 나로서는 당시에 코치도 없고 아카데미도, 함께 연습할 사람도 없었다. 2000년, parkour.com에 올라온 1세대 훈련자들의 영상들을 다운로드 받아 연습했다. La Releve, Parkour Nuit, Speed Airman 영상들은 최고였다! 당시 인터넷 속도로는 고화질은 커녕 저화질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하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parkour.com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파쿠르 자원이었다. 이어서 2003년 생긴 Parkour.net은 세계 각지에 동떨어져 연습하던 트레이서들을 묶어주었고 각종 기술, 움직임 영상들과 노하우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온 시기였다." 


 나도 2004년 파쿠르를 시작할 때, Daum카페 '야마카시 코리아'에서 시작하여, 2006년 Parkour.net을 발견하고는 아시아 포럼에서 열정적으로 영상과 글들을 섭렵하던 기억이 난다. 파쿠르는 인터넷 시대의 덕을 톡톡히 입은 움직임 문화다. 마치 짝궁이라도 된듯이 파쿠르는 인터넷 보급 시기와 함께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파쿠르는 극소수의 길거리 행위예술 혹은 특기 정도로 남아있었으리라. 


 그러나 인터넷이 파쿠르에 긍정적인 영향만 준 것은 아니다. 매체 특성상 영상, 사진, 글을 통해 얻는 간접적인 경험들은 파쿠르에 대한 실제 경험을 왜곡, 포장했고, 그 실체는 가려졌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파쿠르의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연습한 파쿠르를 올리는 각종 영상들로 즐비한데, 이들의 실제 연습과 파쿠르에 대한 접근 방식은 굉장히 단편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양상을 띈다. 영상, 사진, 글 만으로는 파쿠르의 철학, 마음가짐, 태도를 알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는 보여지지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파쿠르 내면의 모습보다 시각적인, 자극적인, 감각적인 이미지 매체(영상, 사진 등)에 걸맞는 파쿠르 기술과 놀라운 점프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파쿠르는 극단적인 양방향성을 띄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쪽은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간접적인 경험을 넘어 직접적인 경험의 영역 - 모임, 동호회 활동으로 빠르게 연결된다. 마음만 먹으면 파쿠르의 창시자들도 만나고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시대다. 반면에 다른 한편은 인터넷상의 정보, 이미지만으로 파쿠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거나 이미 인터넷상의 파쿠르 정보 그 자체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벽을 만든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상으로 파쿠르를 접한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다음과 같다. 


"너무 위험해 보여요" - 위험에 대한 섣부른 가치판단 

"저는 못할 것 같아요." -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섣부른 가치판단 

"여기서 왜 이러는 거죠? 시설물 망가져요. 시민들 이용하는 곳입니다" - 윤리에 대한 가치판단 

 

 마치 하나의 동전에 양쪽의 서로 다른 면이 존재하듯, 인터넷도 파쿠르에 대한 실제적 경험을 가려 섣부른 가치판단에 빠지게 만드는 동시에 자기결정에 따라 역설적이게도 실제적 경험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접근성을 준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띈 파쿠르 지도자들의 활동성과 역량, 양질의 수업 및 이벤트, 워크숍을 제공하는 교육 단체들, 아카데미가 바로 서야 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배경, 목적, 관심,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교육들이 중심이 되었을 때, 이들이 사회적 영역으로 나아가 자신의 목소리와 색깔을 입힐 때, 인터넷에서의 파쿠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의 파쿠르였다면 앞으로의 청사진은 공연예술의 파쿠르, 교육의 파쿠르, 피트니스의 파쿠르, 미디어 산업의 파쿠르, 취미로서의 파쿠르, 커뮤니티의 파쿠르, 디지털의 파쿠르, 건축의 파쿠르, 사회운동의 파쿠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했을 때 파쿠르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과 긍정적인 혜택, 무엇보다도 파쿠르가 줄 수 있는 다양한 실제적 경험을 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인터넷이 주인, 파쿠르가 객이된 지금. 인터넷이 파쿠르를 정의하고, 개념화하고, 전두지휘하고 있다.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사업을 통해 파쿠르가 주인으로 바로 섰을 때, 인터넷이 객의 역할. 즉, 매체로서의 역할로서 온전한 위치에 바로 두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파쿠르가 여기 있다고 세상을 향해 외쳐왔지만,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의미없는 소리를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레비스트로스는 커뮤니케이션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말의 의미가 아니라 말이 발신자로부터 수신자에게로 보내졌을 때 수신자가 느끼는 '반대급부의 심리적 의무감'이라고 말했다. '야호'라고 외친 소리가 파롤(발화)이 되기 위해서는 '그 소리가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라는 물음을 누군가가 세울 때 비로소 파롤이 된다. '야호'라는 소리가 아무리 자극적이고 크고 멋지고 화려해도 수신자가 그것을 인지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의미없는 메아리가될 뿐이다. 


다시말해서 파쿠르와 세상 사이의 상호작용에 매체로서 작용하는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 파쿠르 행위가 파롤로서 작용하려면 "음? 옆동네 개가 짖는구나." "오? 신기한데 위험해 보이네." 등의 단발적인 반응 수준이 아닌 파쿠르에 지속적인 관심을 지닌 호기심어린 수신자가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파쿠르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된 계기인 파쿠르의 고난도 기술과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파롤로서 기능해 왔을까? 단지 옆동네 돼지울음소리는 아니였을까? 


알고리즘의 선택을 기다리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려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여 파롤이 될 수 있는 타겟층에게 주도면밀하게 다가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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