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21. 2023

치악산 홀로산행

치악산 비로봉으로 홀로산행을 결심했다. 탐방안내소에서 세렴폭포까지, 잘 관리된 등산로 뿐만 아니라 우측으로 이어진 계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치악산에 '악(岳)' 자가 왜 붙었는지 잊어버렸다. 오래된 숲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바위와 나무 곳곳에 서린 이끼들, 초목들 사이로 뻣어 들어오는 햇빛과 졸졸졸 귀를 간지르는 계곡물 소리는 닫힌 심신을 내려놓기에 충분했다. 세렴폭포 앞에 도착하자 탐방로 안내표지판과 함께 두갈레길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레이몽 벨(Raymond Belle)의 격언이 떠올랐다. 


"당신 앞에 두개의 갈림길이 있다면, 항상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 


 망설임없이 안내판에 '검정색'으로 표시된 가장 어려운 길을 향해 나아갔다. 치악산의 지기(地氣)가 발 앞꿈치에서 종아리 근육을 지나 허벅지 근육, 둔근을 자극하고, 이어서 폐부에 벅찬 공기를 가득채웠다. 어느덧 이마에는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혔다. 그러나 오르막이 높아질수록 내 입가에는 천천히 웃음이 만개했다. 이게 얼마만에 나만의 산행이던가?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길을 간다. 타협해야할 것, 신경써야할 것, 나를 건드리는 타인의 자극 따윈 없다. 나만의 시간, 속도와 리듬,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하여 산을 오른다. 내가 하고싶은 것은 나의 존재를 확장시키는 일이고,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을 올바른 위치에 두었다. 


"인간은 나무와같습니다. 저 하늘 높이, 태양으로 가면 갈 수록, 그 뿌리는 땅밑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텨주어야 합니다" - Nietzsche, Thus Spoke Zarathustra -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산을 오른다. 그러나 그만큼 땅의 높이도 높아진다는 사실은 금새 잊는다. 우리의 꿈도 이와 같다. 더 높은 꿈을 향해 나아갈 수록, 우리는 더 높고, 더 경사진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내딛는 첫발 하나하나 내가 그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지 시험받는다.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홀로산행은 내게 그런 의미다. 


 내리막은 커녕 평지조차 없는, 비로봉 정상까지 연속된 오르막만 있는 산은 오랜만이다. 생각해보니 한국의 산은 높이가 낮은데 오르막의 경사와 거리가 상당한 것들이 꽤 있다. 그런 산에는 '악(嶽)' 자가 붙는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심취해 잠시 잊었던 이곳이 치악산이라는 것을, 산도 높이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로봉 정상에서 용창중씨가 1962년부터 3년동안 홀로쌓은 3개의 돌탑 - 용왕탑, 산신탑, 칠성탑을 만났다. 


 푸른하늘과 높은 땅 사이 홀로 선 3개의 돌탑들을 보자 명창 배일동 선생님, 밝은빛태극권 강수원 부원장님 강의 덕분에 문득 천부경(天符經)이 떠올랐다. 하나는 하늘을, 둘은 땅을, 셋은 인간을 상징하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몸 구석구석 관절마디마다 세마디로 설명된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땅 중에 가장 높은 곳 사이에서 물구나무로 조화와 균형을 찾아보자. 그래서 물구나무를 섰다. 물구나무에서 손바닥은 뿌리이다. 뿌리내릴 곳이 편치않으니 몸(나무) 전체가 균형을 잃고 흔들거린다. 평평한 바닥을 짚고 서는 물구나무와 울퉁불퉁한 바위를 짚고 서는 물구나무는 천지차이였다. 자주하던 똑같은 물구나무도 하늘과 산 사이에서는 어렵고 새로웠다. 균형과 조화라는 것은 편안한 곳에 있지 않고 불편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인간은 외줄입니다. 한쪽은 동물이 있고 다른 한쪽은 초인이 있습니다. 외줄은 깊은 바다위에 있습니다" - Nietzsche, Thus Spoke Zarathustra - 


 습기 가득한 하산길에 다리를 발견하고는 동그란 얇은 레일 위를 걸어보았다. 아래는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계곡 바위들과 상당한 높이, 물기있는 레일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마음이 떨리니 몸에 긴장이 실리고, 긴장된 몸은 균형을 잃는다. 호흡으로 나에 대한 확신을 들이마시고, 두려움을 내뱉었다. 이내 목적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칠석폭포 앞에서 자리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자연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회복시켜준다. 치악산이 내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운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살라고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나는 문명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실천력을 잃은 길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직업대신 자신을 창조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