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간, 그리고 비즈니스의 전쟁터에서
“신사업은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실행과 리스크 관리의 싸움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직립을 통한 이족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상상한 것을 두 손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어지는 발전의 궤적을 거쳐 인류는 탐험과 전쟁의 역사를 반복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다. 46억 년 지구 역사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티끌에 불과할 만큼 미미하지만, 그 안에 새겨진 인류의 자취는 깊고 굵다. 인간이 남긴 수많은 업적은 상상 속에 머문 것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겨 실물로 구현한 마법 같은 능력의 결과다. 우주를 향한 꿈을 현실로 만들었고, 지구 어디에서든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지구 전체 인류를 한순간에 위협할 수 있는 전쟁 무기도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 바야흐로 생각하는 인류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다소 생뚱맞게 인류의 역사를 먼저 꺼냈지만, 현재의 생활 터전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게임, 즉 비즈니스의 세계다. 남들보다 한 발 빠르게, 조금 더 뛰어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냉혹한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생각하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합법적인 전쟁터가 바로 사업의 영역이다. 제품을 팔 수도, 서비스를 팔 수도 있으며, 거래를 중개할 수도 있다. 농·축·수산물을 생산하거나 가공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돈이 될까 싶은 새로운 영역도 인간의 상상에서 시작해 창조되고 발전한다. 개인이든 법인 조직이든 수익 창출을 통해 번영을 꾀하는 행위, 즉 새로운 사업(事業)을 모색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조직에서 신사업 기획은 어떻게 진행될까? 간단히 정리하면 신규 사업 니즈 발생 → 사업 발굴 → 기획 및 시장 조사 → 기술 개발 또는 M&A → 사업 등록·허가 → 실무(생산·서비스) 및 영업 → 수익 창출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사업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규 사업의 필요성은 여러 사유로 발생하지만, 조직의 발전과 지속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기술 발전에 따른 경쟁력 저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기존 사업의 점유율 하락, 시장 변혁기에 따른 매출 감소 등은 위기 속 생존을 위한 대안 발굴로 이어진다. 반대로 성장 중인 기업도 신규 사업에 관심을 둔다. 기존 캐시카우를 활용해 사세 확장을 꾀하거나, 현재의 성장이 장기적으로 둔화될 것을 대비해 새로운 현금흐름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잘나가는 기업이든 쇠락하는 기업이든, 인력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현재 사업과 동떨어질수록 성공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술과 인재는 기존 기반에서 파생될 수 있고, 투자 역시 설득력이 있어야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 사업 설립 단계가 아니라면 기존 비즈니스와 연계된 신규 사업이 가장 자연스럽고 경제적이다.
신사업 추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업 아이템 선정 단계에 들어선다. 방식은 크게 보텀업(Bottom-Up)과 탑다운(Top-Down)으로 나뉜다. 보텀업은 말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실무진이 발굴·기획한 아이템을 경영진이 점검하고 결정하며, 대기업에서 주로 활용된다. 반대로 탑다운은 CEO나 오너가 관심 있는 사업이 실무진에게 내려오는 방식으로, 중견기업이나 오너 중심 기업에서 흔하다. 어느 방식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이템 선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실행력이지만, 결국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느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대표적인 보텀업 성공 사례로 LG전자의 휴대용 포토 프린터 개발을 들 수 있다. 내부 임직원 제안 제도를 통해 발굴된 이 아이템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출력하고자 하는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반영해 상품화에 성공했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실제 사업으로 연결된 사례로, 보텀업 방식이 신사업 기획에서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본격적인 시장 조사 단계다. 제조업 진출인지, 애플리케이션 기반 스타트업인지, F&B 사업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은 달라진다. 핵심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을 기반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장 조사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볼트 하나도 재료, 사이즈, 강도, 사용 분야에 따라 규격이 다르다. 항공용인지 자동차용인지, 경쟁자는 누구인지,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원자재 공급망은 안정적인지, 경쟁사보다 유리한 조달이 가능한지 등을 따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아이템은 자연스럽게 탈락한다. 인력을 구하기 어렵거나 자금 조달이 실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규 업체든 기존 업체든 초기 장벽을 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기존 사업에서 파생된 신사업을 선호한다. 이 지점에서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시장 수요, 미래 성장성, 수율 등 필요한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며, 우리만 잘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닌 만큼 시장 흐름 전체를 읽는 힘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좋은 아이디어로 출발했음에도 무리한 확장과 M&A로 실패한 경우도 있다. 신선식품 스타트업 정육각은 ‘신선한 고기를 합리적으로 제공한다’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초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 유치와 무리한 사업 확장, 외부 기업 인수 과정에서 재무적 부담이 커지면서 결국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이는 시장성이 있어도 자본·조직·속도 관리가 실패하면 신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마케팅 학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농심의 ‘강글리오’ 커피 사례도 있다. 오너가의 관심으로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된 이 신사업은 아이템 선정부터 STP 전략, 광고·홍보 전반에서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조기 실패로 사라졌다.
이처럼 섣부른 판단과 실행은 자본을 잃게 만든다. 한 대기업 신사업기획팀장은 “100개의 완성된 기안 중 빛을 보는 것은 3개 정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100개 중 10%가 투자로 이어지고, 그중 손익분기점을 넘는 비율은 30% 이하라는 것이다. 결국 전체에서 성공하는 아이템은 3%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다.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어도, 준비된 미래를 만들어 갈 희망은 있다. 핵심은 스스로를 냉정히 판단하고 도전적 목표를 설정해 리스크를 조절하는 것이다. 시장 조사와 기술 개발 단계를 넘어섰다면 꾸준한 투자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의 투자나 손실을 감수하고 물러서는 것도, 더 큰 피해를 막는 현명한 결단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