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약속이고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다.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을 시계가 대신해서 알려준다. 시, 분, 초가 정확하다. 기대와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현재를 알려주고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둥근 얼굴도 있고 네모난 얼굴도 있다. 시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마음대로 만든 모양도 있다. 전자기기로 만든 시계든, 기계장치로 만든 시계든 목적은 동일하다. 알람기능이 있어서 시간의 때가 됐음을 강조하여 알려주기도 한다. 당장 없으면 불편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스마트폰이든 손목시계든 주변 어디에서든 쉽게 시간은 확인할 수 있다.
시계를 닮은 사람은 재미없다. 놀 줄 모른다. 학생들도 그렇지만 회사원도 사장님도 마찬가지다. 시계를 닮은 그들은 다른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오로지 바늘이 움직이는데 관심만 있는 시계다. 시계는 그래서 나를 닮았다. 옆길로 샐 줄 모르는 바보다. 뒤로 갈 줄 도 모르고 느리거나 빠르거나 변주를 할 줄도 모른다.
친구들이 많고 잘 노는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집으로 바로 가지 않는다. 어릴 땐 놀이터를 들르고 커서는 만화방, PC방으로 변했다. 놀잇감을 찾아 돌아다닌다. 학교-집이 아니라 학교-놀이터-집의 루트다. 그러니 친구들의 관심을 독차지 한다. 게임 잘 하면서 춤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면서 공부까지 잘하면 전국구 스타겠지만 보통은 앞의 두 개 정도만 잘해도 지역구 스타다. 스타들은 바쁘고 많은 시선들을 거두고 다닌다. 어릴 땐 그런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12년 개근에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했다. 수능 백일주라는 걸 지나고 나서야 처음 들었다. 등신이다. 주변 친구들도 나 같은 등신들 밖에 없었다. 야자시간 빼먹는 건 상상도 못 했지만 딴짓할 줄도 몰랐다. 기껏 시험 치고 난 직후의 야자시간에는 유행하는 노래 들으며 혼자 노는 것이다. 내 자리를 벗어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국토대장정도 한 번 못해봤다. 대학생 때 남들 다 하는 배낭여행도 제대로 한 번 못해봤다. 어른이 되니 겨우 시계가 조금씩 멋대로 간다. 그나마 운전을 배우고 난 후 그렇다. 길게 늘어선 줄에 끼어들기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큰 탈선이다. 터널 안에서도 실선을 넘나 든다. 그리고 내 진급도 누락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이렇게 공감 가는 건 처음이다.
어릴 땐 제멋대로 가는 시계를 부러워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제대로 가는 시계를 가진 친구들이 부럽다. 때 되면 차장, 부장 달고 그리고 부서장도 하고 그러다 늦지 않게 임원도 달고. 심지어 30대 때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집 애가 공부도 잘 한다면 질투가 더블로 샘솟는다. 뉴스에서 말하기를 서울 집값은 온갖 수를 다 동원해도 안 잡힌다고들 하는데 그 집을 제 손으로 일군 사람들도 있다. 하물며 서울에 집도 있으면서 그 유명한 엔비디아 주식도 이미 가지고 있다면 말 다 했다. 먼저 저 멀리 가버린 시간을 붙잡고서라도 서울 부동산아 미국 주식아 나를 업고 가라고 소리치고 싶다.
그래 맞다. 솔직히 부럽다.
그래도 억지로 시계 바늘을 돌리진 말자.
내 시계가 흐르는대로 순리대로 가자.
느려도, 조금 틀어져도, 결국 나만의 시계가 움직일 것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