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턴어라운드를 위해서
예민한 성격을 가진 A는 사소한 상황에서도 대체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무실에서 갑자기 울리는 전화기 벨소리에 깜짝 놀란다. 미간이 찌푸려지며 어금니를 꽉 깨문다. 그런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코로 한번 숨을 크게 내쉬고 만다. 정작 당사자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당연히 사무실 안에선 아무도 전화 벨소리로 트집 잡는 사람은 없다. 전화받는 목소리가 커지더라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복합기 용지가 다 떨어졌나 보다. 복합기가 ‘삐삐’하고 알람을 울리며 기계음을 내더니 곧 출력하는 소리가 사라졌다. A에게 거슬리긴 마찬가지다.
메일함을 열어본다. 온통 빚을 받기 위해 독촉하는듯한 메일로만 보인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주변에 요청하여 다시 취합받는 일이 대부분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분명히 머리로는 별 일 아닌데, 식은 죽 먹기인데도 메일을 읽기가 사람을 대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말, 글 대부분이 신경 쓰인다. 인사말, 맺음말이 마음에 안 들면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지적하는 모습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참는다. 가만히 있는다. 마음에서도 지워야 하는데 다음에 보면 그게 또 떠오른다.
사람과 일에게만 유독 그런 경향이 있는 줄 알았다.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아무 장소에나 잘 적응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꼼꼼하다고 생각했는데 예민하고, 하나라도 더 챙기는 성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기저기 보이고 듣는 것들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감사해 할 줄도 만족할 줄도 몰랐다. 내가 잘 난게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 일도 사람도 인생도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취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그마저도 몸이 약했다.
여기서 벗어나면 행복한 줄 알았다. 장소 아니 회사라는 조직이 문제인 줄 알았다.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또 괴로움을 느끼면 괴로움의 원인이 그곳에서 찾는다. 다시 새로운 곳을 찾는다. 반복된다. 하지만 무지한 채 세월만 흘렀다. 괴로움은 내 밖에 있는 것도 아닌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는 걸 몰랐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이 고요했던 사무실의 분위기를 깨워준다. 내 전화는 아니니 괜찮다. 전화하는 목소리가 커져도 일을 해결하려 애쓰는 동료의 목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응원한다. ‘너도 고생 많다.’ 복합기에 용지가 다 떨어졌다. 일어나서 용지를 채운다. 운동도 된다. 일어난 김에 허리도 한번 핀다.
메일함을 열었더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하루 종일 일 없이 앉아 있으면 심심하다. 그럴 때 메일 주고받기를 하면 시간이 잘 간다. 정보 찾기 놀이와 주고받기 놀이를 하면 집중도 잘 된다. 가끔씩 거슬리는 글이나 소리를 들어도 건너뛰고 흘려듣는다. 가끔씩 맛집 블로그로 눈팅하며 불금을 기다린다. 주말도 좋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갑작스레 친구 연락이 끼어 있으면 더욱 반갑다.
어디를 가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시절이 있었다. 힘들다고 느끼는 걸 잘못됐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이니 예민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평생 핑계만 대고 살 수는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결국 제 자리에서 커 나간다.
그럼 이제 딛고 서자. 불만족을 불평의 에너지로 불을 지피지 말고 응축시켜 더 큰 에너지로 만들자. 지금처럼 사유하고 성찰하고 되돌아보자. 인정하고 찾자. 다만 회피만이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안다면 부딪히자. 더 좋은 답을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