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오늘같이 단체 손님 조식을 준비해야 하는 날이면 눈이 가뿐하게 떠진다. 전날부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려보며 예행연습을 몇 번이나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수하고 포니테일로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다. 무채색의 단순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다려둔 앞치마를 두른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툭툭 남편에게 일어나라고 인기척을 한다. 전날 생각해 둔 대로 아이들이 먹을 아침과 도시락을 싸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벌써 6시 30분이다. 남편과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독일 손님 30명의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뉴질랜드의 여름이 다가오면 유럽 단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국의 어르신들이 해외로 패키지여행을 가는 것처럼, 영어에 익숙지 못한 유럽의 어르신들도 그룹으로 여행사를 통해 뉴질랜드에 관광을 온다. 짜여진 일정으로 이동시간이 바쁜 그들은 숙소에서 다같이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옵션을 선호한다. 일반적인 로컬 카페에서는 이른 아침 30명 단체손님의 식사 준비를 버거워하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그들에게 다정한 아침을 대접하고 싶다 생각한다.
베이컨을 오븐으로 구워내는 법을 익힌 이후로 공정이 훨씬 쉬워졌다. 롯지 오븐으로 부족해서 몇 발자국 떨어진 우리 집 오븐까지 동원하여 동시에 60장의 베이컨을 구워낸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어려운 쿠킹 과정은 없지만 모든 음식을 동시에 따뜻하게 서빙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날 사 온 신선한 토마토를 씻어 반으로 잘라내고 프라이팬에 질 좋은 소금과 통후추를 뿌려 구워낸다. 적당한 온도에서 약간의 설탕을 휘리릭 뿌려 뒤집으면 프라이팬 밑의 기름과 설탕이 글레이징 되어 토마토가 반짝반짝 빛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얼떨결에 내 일이 되어 버린 조식 서비스를 내 나름대로 연구하다가 발견한 팁들이 내심 자랑스럽다.
그다음은 버섯요리. 이렇게도 잘라보고 저렇게도 잘라보고, 이 버섯도 써보고 저 버섯도 써보고, 센 불에도 해보고 약한 불에도 해보고, 후추를 미리 뿌려보고 후에도 뿌려보고, 이 방법도 해보고 저 방법도 해봐도 도무지 내가 지난번 그 카페에서 먹어본 맛이 안 나서 꽤 오랫동안 속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동네 요리 선생님께 비법을 전수받아 나의 레시피가 안착됐다. 바로 좋은 버터를 듬뿍 넣을 것! 버터와 버섯을 그대로 놓아두면 된다. 버섯은 너무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존재였다. 무심한 듯 툭 던져 놓았다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을 때 살짝 뒤적여주고 후추만 찹찹 뿌려둔다. 잘하고 싶어 건드리면 이 녀석은 짜증 난다는 듯이 몸에 있는 수분을 죄다 밖으로 뿜어내어 질척질척하게 되어버리니까. 남편과의 관계도 버섯의 조리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때맞춰 타이머가 울린다. 베이컨을 확인할 시간.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아주 약하게 워머만 틀어놓은 전기팬으로 옮겨야 한다. 적당한 시간에 옮겨 은근하게 데우다 보면 손님이 올 시간에 맞춰 바삭하면서도 윤기 나게 육즙을 머금고 있는 맛있는 상태가 된다. 딱딱하고 크리스피 한 베이컨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겉은 바삭하면서도 식감이 적당히 말랑말랑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정도를 맞춰 놓는다.
이제 비어있는 오븐에는 해시브라운이 들어가고 중간에 한 번 뒤집어줘야 하니 타이머를 한 번 다시 맞춰둔다. 그 사이 남편은 네스프레소 머신을 세팅해 두고 드립 커피도 20인분이나 내려놓았다. 전날 맞춰둔 테이블과 의자 수에 맞게 커트러리와 냅킨을 놓아두었다. 토스터 기계를 꺼내고 식성 좋은 독일 손님들을 예상해 넉넉히 식빵을 마련해 두었다. 오렌지 주스와 유리잔을 놓아두는 것도 그의 일이다. 예전에는 버터를 버터 칼로 일일이 긁어내어 힘들어하더니 그냥 다른 카페처럼 일인용 버터와 잼으로 준비해 놓기로 했는데 준비 시간도 단축되고 로스도 적어졌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 부분은 실용적인 면을 더 중시하기로 했다. 남편이 잠깐 짬을 내어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한입 들이키는 모닝 라테의 맛은 기가 막히다.
이제 뭐가 남았을까. 계란을 구워내야 한다. 한두 명의 개별 손님일 때는 취향에 따라 수란이나 스크램블 에그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단체 손님은 무조건 프라이드 에그로 통일하기로 했다. 처음엔 계란만큼은 요리하자마자 바로 나가야 맛있다고 생각하여 손님들이 오면 굽기 시작했는데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으로 그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프라이팬 3개 분량을 미리 조리해 둔다. 한 프라이팬에 계란이 네다섯 개씩 구워지니 오늘 같은 경우는 15인분 정도, 미리 반을 준비해 두는 것이다. 단체지만 조금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나머지는 그 텀에 맞춰 조리하면 된다. 이런 것들을 몸으로 익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가!
마지막으로 베이크드 빈을 캔에서 꺼내 유리용기에 넣어 덥힌다. 남편은 손님 수대로 꺼내놓은 접시들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뜻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음식이 아무리 따뜻해도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들이 차가우면 금세 식어버린다. 조금이라도 온도를 맞추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었다. 이제 해시브라운도 다 익어 오븐은 워머로 돌려두었다. 여기까지 한 시간을 꽉 채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7시 30분. 남편은 잠가두었던 다이닝 룸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휴. 이제 서빙만 제대로 하면 된다.
헬로우, 좋은 아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