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사랑 편지 #4.
지아야, 오늘 아빠 생일 파티 즐거웠지? 근처에 사는 고모네 가족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었지. 케이크의 촛불을 끄기 전에 잠시 기도하는 아빠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 너희들은 아빠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뽀뽀세례를 했지. 엄마는 이런 소소한 우리들만의 파티를 정말 사랑해. 한 사람의 특별한 날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하는 과정이 무척 설레. 카드를 고르고 생일 저녁 메뉴를 정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파티는 시작되는 거지.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은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이렇게 행복을 이야기했어. '드라마 같은 행복, 예외적인 행복, 미스터리한 행복의 비법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다.(중략) 좋은 사람들과 소소하게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고, 서로 이해하고 감사해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돌아보면 내 삶에 사랑과 행복이 깃든 순간들은 늘 보통의 순간이었어. 푹 자고 일어난 아침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쌔근쌔근 아직 아기처럼 자고 있는 너의 숨소리가 내 코앞에서 들릴 때(너는 아직도 엄마가 옆에 없으면 잠에서 깬단다.), 아빠가 엄마 몰래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쑥스러운 듯 내밀 때(이미 다 눈치챘지만 놀라는 척하지!), 정원에 심어둔 모종이 자라 예쁜 꽃이 방긋 웃으며 피어오를 때, 학교 끝날 때맞춰 너희들을 데리러 가면 엄마하고 큰 소리를 외치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전속력으로 엄마에게 달려와 안길 때 같은 순간들 말이야.
엄마는 언젠가부터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단다. 예전에 엄마에게 무척 잘해주시는 회사 선배가 있었어. 그분은 우리 모두가 다 각자 관계의 은행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내가 평소에 상대방에게 차곡차곡 좋은 마음을 적금해 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적금을 꺼내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문득 그 선배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더라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평소에 작은 행복들이 서로에게 쌓여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게 되거나 서운한 감정이 생겼을 때도 그 관계의 은행에 쌓여있는 행복 한 스푼, 사랑 한 스푼 내어주며 풀어갈 수가 있는 거지. 그래서 평소에 그 행복과 사랑의 계좌가 바닥나지 않게 잘 저금해두려고 해.
너와 네 오빠는 엄마의 밥상을 정말 사랑하지. 엄마는 정말 요리를 잘하는 것 같아요, 엄마 음식이 최고예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나도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어찌나 행복한지! 나도 내가 이렇게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삼시 세끼를 챙기게 될 줄 몰랐어. 신혼 때는 할 줄 아는 음식이 얼마 없어서 자주 당황했지. 거의 반년 동안 요리학원을 다니고 요리책들을 사 모으고 외할머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면서 하나씩 터득했어.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데 세 시간이나 걸린 적도 있었지. 그 뒤 주방은 초토화되어 있었고. 그렇게 매일매일의 수고가 쌓여 지금 엄마는 거의 만능 요리사가 되었던 거야. 나는 그 수고가 가족을 향한 나의 찐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어. 장을 보러 갈 때부터 음식재료를 분류해 냉장고에 넣고 메뉴를 짜고 식사를 준비하는 그 순간순간에 엄마의 사랑이 깃들어 있단다. 엄마들의 집밥이 맛있는 이유는 그 안에 사랑 한 스푼이 조미료로 들어가기 때문인 거지.
오늘 엄마는 행복과 사랑이 당연해 보이는 것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 행복의 비결은 거창한 데 있지 않거든. 사실 너는 이미 그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부디 그 인생의 비밀을 잊지 않길!
오늘도 좋은 하루였네. Good night!
핸드폰 사진첩에 cake라고 검색해 보았더니 그동안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만들었던 생일 케이크들이 쭉 검색되더라.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그 순간순간 사랑 한 스푼, 행복 한 스푼이 다 기억이 나는구나. 엄마의 그 사랑이 부디 네 인생의 자양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