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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 영아 Nov 20. 2023

햇빛색 뉴질랜드 그리고 12월의 여름

딸에게 쓰는 사랑 편지 #5


지아야, 이 글을 읽고 있을 지금의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니? 일곱 살의 너는 '당연히 여름'이라고 대답했단다. 왜냐하면 네 생일이 12월 여름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엄마는 아직도 남반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있는 북반구와 정반대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너만 해도 흰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태어났는데 뉴질랜드에서 너는 여름에 태어난 아이가 되어 있잖니! 게다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정말 이색적이지. 햇빛이 쨍쨍한 해변가의 크리스마스도 제법 낭만적이야. 



뉴질랜드의 여름은 과히 환상적이지. 엄마의 동네 친구가 뉴질랜드는 햇빛색이라고 하더라고. '눈으로 본 기억 속의 뉴질랜드는 모든 것이 눈부셨다. 평범한 색이 아니라 맑은 하늘색, 빛나는 초록색 이런 식이다. 아름다웠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정말 그대로 햇볕에 눈이 시릴 정도로 구석구석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햇빛색의 장소라는 말이기도 하다.'라고 친구가 쓴 글을 읽었어.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했는지! 이곳에서는 같은 풍경이라도 햇빛이 닿을 때와 비가 주룩주룩 내릴 때가 너무나 달라. 특히 엄마처럼 날씨에 예민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그 다름이 다가오지. 그래서 오늘같이 가을비가 정처 없이 내리는 날에는 엄마는 한없이 바닥으로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라앉아. 하지만 햇빛이 반짝반짝 온 세상을 비출 때 우리 동네 해변가를 걷노라면  마치 파라다이스에 온 것만 같아. 날마다 걷는 그 산책길이 날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새롭게 또 감탄하고야 말지.



'엄마,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것 같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니까요!' 네 오빠도 그렇게 자주 고백하곤 하잖아. 햇볕이 따사로운 여름날, 너희들과 바닷가 산책하는 시간을 떠올려본다. 약간의 살랑거리는 바람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지. 햇빛이 비쳐 반짝거리는 바다의 잔물결을 바라보며, 질끈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만지듯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지. 그 순간 내 귓가에 너와 오빠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단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한국과 달리 건조해서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증막 같은 여름이 아니잖아. 실컷 바다수영을 하고 나와도 햇빛 아래 잠시 앉아 있으면 금세 물기가 다 말라 버려 툭툭 모래만 털어내고 수영복 입은 채로 비치타월을 두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 또 나무 그늘 아래 있으면 어찌나 시원한지 불평 하나 할 수 없는 여름 날씨야. 



여름 방학도 7주 정도나 되잖아.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정말 원 없이 휴식하며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지.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엄마 아빠의 일은 그 시기가 제일 바쁠 때이긴 하지만, 우리 로지(Lodge)가 북적북적하니 여름이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 같지 않니? 열심히 일 마치고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오 분 만에 해변가에 도착해 바다에 퐁당 빠져서 헤엄치다 보면 스트레스 따윈 다 사라져 버려.



이렇게 완벽한 여름이 이번에는 무척이나 다르게 다가왔어. 사이클론 가브리엘을 기억하니? 뉴질랜드 곳곳에 침수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몰라. 우리 동네도 곳곳에 도로가 끊길 정도로 심각했어. 예약 손님들이 우리 동네로 들어오지 못해 다 취소해 줘야 해서 안타까웠지. 우리 정원도 초토화되어 우리 집 꼬맹이 지아 너까지 동원되어 바람에 꺾여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치우고 정리하느라 며칠을 보냈었잖아. 다들 이번엔 겨우 2주 정도의 여름을 만났다며 아쉬워했지. 해가 다르게 기상 이변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지구를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돼.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던 것도 기억난다. 엄마는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파라다이스 같은 뉴질랜드의 여름을 보낼 수 있길 기도하고 있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너희들을 키울 수 있어 감사해. 부디 너를 둘러싼 눈부신 자연의 빛 가운데 보낸 유년의 시절이 네 삶의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가 어른이 되어 혹 힘든 일을 겪게 되었을 때 기꺼이 이겨낼 힘의 원천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부디 좋은 하루였길! Good night.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리 동네 바닷가의 여름여름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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