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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 영아 Nov 21. 2023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할까 해

딸에게 쓰는 사랑 편지 #6


지아야, 너랑 오빠는 질문을 무척 많이 하지? 하루는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서 물었지. 엄마는 주저 없이 독서와 영화 감상을 꼽았어. 그때 너도 '맞아요, 우리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다 같이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요.'라고 앵무새처럼 엄마를 따라 말했지. 네가 나이가 조금씩 먹어가면서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의 폭이 넓어져서 참 좋아.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 보았던 디즈니 영화라든지, '나 홀로 집에'나 '해리 포터' 같은 영화도 같이 볼 수 있으니까. 함께 영화를 보고 나면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아. 영화 한 편으로 우리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구슬처럼 꿰어지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하나 소개할까 해. 네가 크면 꼭 함께 보고 싶은 영화야. 노라 애프론 감독의 '줄리 앤 줄리아(Julie & Julia)'라는 아주 사랑스러운 영화지. 영화 제목에서도 눈치챘겠지만 줄리와 줄리아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2002년의 줄리와 1949년의 줄리아의 이야기가 교차돼서 편집된 영화란다. 두 여성의 연결점은 바로 줄리아가 쓴 요리책이야. 1949년 줄리아가 프랑스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요리사가 없는 미국인을 위한 프랑스 요리법'에 대해 책을 썼는데, 2002년 미국 퀸즈에 사는 줄리가 줄리아의 책으로 요리를 하고 그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지. 요리에 진심인 세대가 다른 두 여성 작가의 이야기. 그러니 엄마가 얼마나 이 이야기에 빠져들었겠니? 



1949년의 줄리아는 아주 사랑스럽고 매사에 느긋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여성이야. 엄마가 진짜 좋아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이 그 역할을 맡았는데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단다. 남자처럼 키가 큰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과 말투는 천상 여자에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그러면서도 목표를 향한 집념과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르 꼬르동 블루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요리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그녀를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주려 하지 않자 그녀가 끝까지 도전하고 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는 모습은 정말 감명 깊었어. 줄리아는 실제로 미국에서 전설의 셰프가 되지만, 처음에는 그녀도 양파 썰기 연습하다가 거대한 양파산까지 만들어놓을 정도로 연습을 했어. 영화 속 명장면이지. 



반면 2002년의 줄리는 잘 나가는 자신의 친구들에 비해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을 지닌 여성이야. 줄리가 친구들 모임에 나갔을 때 장면이 생각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를테면 친구들은 한눈에 봐도 비싸고 신상인 옷들을 차려입고 나와서 자신의 근황을 자랑하지. 한 친구는 잘 나가는 사업가이고 한 친구는 잘 나가는 작가이고 이런 식. 학교 다닐 때는 고만고만했던 친구들인데 졸업하고 어느 순간 누구누구는 너무 잘 되고 나는 매일이 그저 그런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만 거지. 그 모임을 뒤로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무심코 전화를 받아. 전화기 속에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돼. 아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그런 줄리의 유일한 낙은 요리였고, 인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그녀는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으로 매일 요리를 하면서 그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해. 그 블로그가 소위 대박이 나며 그녀는 진짜 그녀가 바라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그리고 그 책으로 이 영화가 만들진 거야. 



어른이 되면 한 번씩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 지지부진한 현실의 괴리에 괴로울 때가 있단다. 그때에 네가 이 영화를 떠올려보았으면 좋겠어.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 나를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그 한 가지 일을 찾아내고, 그것이 완벽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연습하고 인내하고 다시 도전하는 줄리와 줄리아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 한 가지 더 줄리와 줄리아 옆에서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던 파트너 이야기를 빼놓을 뻔했네. 그녀들의 공통점은 바로 옆에 그녀들을 존재 자체로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남편이 있었다는 거야. 줄리에게는 요리 블로그를 한 번 해보라고 제안하는 다정한 에릭이 있었어. 줄리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남편이 폴이 있었고. "Julia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and breath to my life."라고 밸런타인데이에 부인에게 고백하는 남편이라니! 그는 줄리아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며 그녀의 재능을 이끌어냈어. 그리고 그녀의 요리책 출판이 지연되었을 때도 '당신의 책은 대단해요, 당신의 책은 세상을 바꿀 거예요, 당신 내 말 듣고 있나요?'라며 그녀를 격려하지. 돌아보면 엄마도 인생에서 커다란 산을 만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로 기꺼이 그 산을 넘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엄마는 네 삶에도 선물 같은 사람들이 가득하길 기도하고 있어. 



이 영화는 노라 애프론 감독의 유작이기도 해. 네가 시간이 된다면 그 감독의 영화들도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들을 많이 남겼거든. 엄마에게 함께 보자고 하면 언제든지 오케이 할 거야! 언젠가 너도 엄마에게 네 인생 영화를 이야기해 줄 날이 오겠지? 너와 친구처럼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최근에 본 영화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할 날이 그려진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네!



오늘도 좋은 하루!








엄마가 소장한 관련작들. 왼쪽부터 줄리아 차일드 자서전, 줄리 앤 줄리아 영화 DVD, 영화의 원작 줄리 파웰의 책.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도 소장하고 싶구나.






▶아래는 줄리 앤 줄리아 예고편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음)



https://youtu.be/ozRK7VXQ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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