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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 영아 Nov 22. 2023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딸에게 쓰는 사랑 편지 #7


지아야, 오늘 처음으로 카약을 탄 기분이 어때? 네 오빠는 너를 가르쳐 주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온종일 불평을 했지. 그밖에 오빠를 힘들게 했던 다른 일들까지 덧붙여가며. 너는 처음으로 데이 캠프에 참여했고 처음으로 카약을 타 보았으니 오빠가 어쩌고저쩌고 타박을 해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것 같더라. 첫 도전과 첫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멋지니까! 네 오빠는 오늘 그저 재미있게 카약을 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가 너와 한 팀이 되고 너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니 적잖이 당황하고 힘들었나 봐. 누군가의 돌봄을 받다가 누군가를 챙겨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니 벅찼던 것 같아. 집에 돌아와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비로소 짜증이 수그러들었으니 오늘 하루가 만만치 않았나 보더라. 네 오빠의 불평과 짜증을 들어주느라 엄마의 인내심은 거의 바닥이 났었지. 그러다 문득 엄마가 좋아했던 소설의 한 캐릭터가 떠올랐어. 그 소설 속 체로키족 인디언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지.



엄마가 좋아하는 이야기 속 그 할아버지는 자기 손자를 '작은 나무'라고 불렀어. 인디언들은 이름을 참 예쁘게 짓는 것 같지 않니? '작은 나무'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1년 만에 엄마를 잃었어. 겨우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그는 결국 체로키족 인디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깊은 산속에서 살며 체로키식 교육을 받으며 살게 되었지. 그 당시 미국에서 백인들이 인디언 강제 이주 정책을 펼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산속에서 살게 되었었나 봐. 그 덕에 '작은 나무'는 산의 일부가 되어 산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 그리고 체로키들이 세대를 이어오면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던 가르침과 지혜들을 체득하게 돼.'작은 나무'는 할아버지로부터, 감사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준다든지, 또 필요한 것 외에는 대지에서 가져가지 않는다든지 하는 인디언의 생활철학을 배울 수 있었어.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 거의 없으셨지만 어쩌다 한마디 하면 그 권위와 현명함에 아무도 거역하는 사람이 없었지.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알고 할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분이셨어. 굉장히 위트가 있는 분이셨기도 했는데 이런 할아버지를 묘사하는 한 장면을 이야기해주면 더 쉽게 캐릭터가 그려질 거야.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깨워주겠다'고는 하시지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조금도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여러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내 방 벽에 쿵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소리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덕분에 한발 먼저 밖으로 나간 나는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 서서 할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아니, 벌써 나와 있었구나!"


할아버지는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고,


"예, 할아버지."


내 목소리에는 뿌듯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오늘 엄마는 데이캠프 첫째 날을 마치고 지쳐서 돌아온 네 오빠의 불평을 들으면서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 거야. 네 오빠를 진심으로 이해하면서, 그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배려하며,  스스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뿌듯함을 느끼게 그렇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엄마는 아직 지혜가 많이 부족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지아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네 오빠 이야기를 집중하느라 너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 거야.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고 고무장갑을 벗어두고 텔레비전을 보며 쉬고 있는 너에게 다가갔지. 그리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했어. "지아야 아까 서운했지? 엄마가 오빠 이야기만 듣느라고 지아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못했네. 오늘은 오빠가 많이 힘들어해서 그랬는데 그래도 엄마가 잘못한 것 같아.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이따 침대에서 이야기해줘. 아니면 우리 둘이 데이트할 때라도!"라고 말했을 때, 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어. 이렇게 작은 아이가 자기보다 큰 엄마와 오빠 둘 다 배려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단다. 아무래도 엄마는 그 소설을 다시 읽으며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에게 좀 배워야 할 것 같아.



아 참, 소설의 제목을 말해주지 않았구나! 한국어 제목은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이고 영어 원제는 「The education of little tree」란다. 혹자는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결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볼 수 없다고도 했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영혼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있거든. 부디 네가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내일 데이 캠프 이 일차도 즐겁게 보내길! 




덧붙임. 엄마가 너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려고 검색을 해보다가 방금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어. 저자 포레스트 카터는 필명이고 실제 본명은 아사 카터란 사람인데,  그가 백인우월주의자로 적극적인 인종차별을 지지했다고 하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고 그 안에 백인 미국 사회의 잔혹함과 위선을 담은 내용들이 있었는데 책의 내용과 그의 삶이 달랐다니 적잖은 충격이었어. 이 책이 그가 죽기 몇 년 전에 쓰인 것 같은데 혹시 그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쓴 게 아닐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더라. 반면 오프라 윈프리는 오랫동안 이 책의 팬이었는데 그녀의 책장에서 이 책을 치워버렸대.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속상하구나. 네가 이 글을 읽게 될 나이라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조금은 알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엄마는 한 사람의 업적과 과오를 어느 정도는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라 여전히 이 책은 추천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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